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LS 이사회 의장
한국 산업구조·무역환경 전환기... 새해 美 대선 등으로 변수 더 많아져
재계 새 성장동력 확보 힘 합치고, 정부는 '기울어진 규제' 바로잡아야
한국 산업구조·무역환경 전환기... 새해 美 대선 등으로 변수 더 많아져
재계 새 성장동력 확보 힘 합치고, 정부는 '기울어진 규제' 바로잡아야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삼성, LG, SK 등 큰 기업들에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결국엔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LS 이사회 의장)은 2024년 갑진년 새해를 하루 앞둔 12월 31일 파이낸셜뉴스와 세밑 인터뷰에서 "한국 무역의 구조적 전환기, 새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기업인들이 고민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며 한국 재계 리더로서 기업가론을 강조했다.
재계의 대표적 자전거 애호가인 구 회장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페달을 밟아야 하고, 더 멀리 더 빨리 가려면 혼자가 아닌 파트너와 함께 달려나가야 한다"며 신사업 추진과 도전, 저출산, 산업구조 전환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젊은 기업가들이 더욱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협 조직의 역할 강화도 역설했다. "새해 미국 대선 등으로 통상환경이 급변할 가능성에 대비해 한일, 한미, 대유럽 교류 특별위원회를 신설·가동해 민간 차원의 통상소통 채널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내적으로 "경쟁국 대비 불리한 규제여건을 가리키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정책적 제언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인터뷰 내내 거창한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본연의 역할" "본연의 기능 강화" "우리가 하던 일을 더욱 잘해 나가겠다는 것" 등 비교적 담백한 용어를 구사했다. "변동성이 큰 위기 상황일수록 '조직이 본연의 역할을 하느냐'에 조직의 명운이 판가름나는 법"이라며 업(業)의 기본을 거듭 강조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현장형 리더이자 기업인답게 추진력이 매우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대기업 회장을 지냈지만 평소 스파(SPA) 브랜드의 2만~3만원대 와이셔츠를 즐겨 입을 정도로 소탈한 면모도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수출잠재력이 약화됐다는 지금의 형국을 어떻게 진단하나.
▲외국기업들과 '최소한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운동장'(규제여건)부터 평평하게 바로잡았으면 한다. 주52시간제 등 규제가 여전히 너무 많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여름이 대목인데, 겨울에 주52시간을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노동시장도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혹자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얘기하면 사람을 아무 때나 쉽게 자르는 과거 잭 웰치(전 GE회장)식 경영을 떠올린다. 그런 방식이 좋은 것도 아니며, 지금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시대 또한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도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들은 과감하게 혁신하고, 경쟁국의 대규모 보조금 정책에 대응해 기업 투자 인센티브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공급망도 대단히 복잡해지고 있다. 기존 대정부 건의활동과 더불어 입법기관인 국회 등으로 정책제언 채널을 확대해 경제현장의 이런 목소리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2024년은 미국 대선 등 40개국에서 선거가 있어 '슈퍼 선거의 해'다. 각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새해 통상환경에 영향이 예상되는데 무협의 대응방안은.
▲미국 양당 모두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대중국 견제, 통상압박을 선거캠페인으로 내걸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통상 거점인 워싱턴과 브뤼셀에서 통상로비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유일한 민간단체다. 통상환경이 급변하는 현시점엔 이런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 기업의 일본 진출 확대, 일본 재계와의 소통 확대 등을 위해 한일특별위원회를 설립했는데 새해에는 대미국, 대유럽연합(EU) 교류 특별위원회도 신설해 민간 차원의 대외통상 문제를 집중적으로 심도 있게 해나가려고 한다. 워싱턴, 뉴욕 등 미국 내 두 곳의 해외지부 외에 한국 반도체 기업 등이 진출해 있는 댈러스(텍사스주)에도 사무소를 신설했다. 대미 경제협력사절단도 파견할 계획이다.
―최근 미국에서 한미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밴플리트상을 받았는데 민간외교 활동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훌륭한 시스템은 일정 수준 성과를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사람'이 빠지면 진정한 결실을 거두기 어려운 법이다. 인적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과거 종합상사(옛 LG상사) 근무 당시의 경험을 반추해 보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은 인연들이 모여서 수출기회를 만들곤 했다. 무협 회장으로 주한대사 초청 네트워킹 행사를 신설·정례화했고 중동, 아프리카, 아세안 지역 인사들과의 만남도 확대했다. 이런 노력들이 언젠가는 우리 기업들의 신시장 개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민간의 교류 확대는 통상마찰을 사전에 제어하고 해소할 수 있는 그 나름의 기능이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다소 식고 있어 새 돌파구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열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2008년 이후 우리 수출 증가율은 세계 수출 증가율을 상회했으나 2017년 이후부터는 수출성장세가 정체되고,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2017년 3.23%→2023년 상반기 2.59%)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명 '5대 신산업'이라 할 수 있는 2차전지, 바이오헬스, 전기차, 차세대 디스플레이, 차세대 반도체 업종 수출은 전체 수출의 24%(2022년)를 차지해 10년 전(2012년 9.4%) 대비 큰 폭으로 성장하며 잠재력을 증명했다. 과거 10년간 이들 신산업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12.3%)도 총수출증가율(2.2%)을 크게 상회했다. 수출부진 해소의 열쇠가 바로 이 5대 신산업의 주도권 선점에 있는 것이다. 신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세제혜택 등 정책 제언과 애로사항 건의에 힘쓰고 싶다.
―새해 무역전망은 어떻게 보나.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품목 수출 대부분이 증가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수출은 7.9% 증가한 6800억달러, 무역수지는 140억달러 흑자를 예상한다. 낙관적이란 지적도 있는데 무협 전망은 그 어느 기관에 비해 적중률이 높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이슈가 빈발해 교역 회복세를 제약할 수는 있다.
―서방사회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대한 준비 분위기가 포착되고 있는데.
▲새해 초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의 허브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폴란드 바르샤바 지역에 지부를 개설한다. 우리 기업들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업은 현지 시장환경이 불투명하고 전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어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오너가 3·4세 경영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재계의 젊은 멤버들에게 기업가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LG에서 계열분리해서 나왔으니 1.5세에 해당한다. 쉰살 넘어서 사장에 취임했으니 지금의 3·4세 경영자들은 이보다 10살 이상 어리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다 보니 도전정신이나 기업가 정신이 떨어질까 하는 시선도 있지만, 훌륭히 역할해 줄 것으로 믿는다. 그중 내 아들(구동휘 LS일렉트릭 대표)도 있다. 사실 가혹할 정도로 훈련을 많이 시키고 있다. 임직원이 전부 지켜보고 있으니, 실력을 갖추고 겸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내 나름대로는 혹독하게 한다고 하는데 물론 중요한 것은 남이 볼 때 그렇게 봐줄 수 있느냐 아니겠는가.(웃음) 기업인이 경영을 하고 있으나 국가, 국민과 함께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공동체 번영에 공헌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기업인의 정신이며, 곧 경영자로서 꿈꾸는 기업의 미래다.
―15년 만에 기업인 출신으로 무협 회장에 취임, '무보수 회장'으로 3년간 활동했다. 그간의 소회와 함께 무협 조직의 역할과 소임이 무엇이라고 보나.
▲현재 한국무역은 구조적 대전환의 한가운데에 있다. 변동성이 큰 위기 상황인 만큼 빠른 의사결정으로 조직 업무에 속도를 주고자 했다. 또 정답이니, 관행이니 하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지에 따라 조직의 대응능력이 판가름 난다. 우리 본연의 역할인 '수출진흥' '무역업계 대변자'라는 임무에 집중하고자 했다. 국내 전 지역을 다니면서 기업인들을 만났고,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이른바 킬러규제 등을 모아 정책건의(130건)를 했다. 2021년 세계적 물류대란으로 수출 선적이 막혔을 당시엔 해운사와 항공사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중소기업 185곳을 위한 화물 전용공간을 확보했다. 또 77년 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신산업 분야라 할 수 있는 바이오(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스마일게이트·SM엔터테인먼트), 콘텐츠(CJ ENM) 기업들을 회원사로 영입해 1970년대생 젊은 경영인들을 회장단에 포함시켰다. 내 나름대로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다.
■구자열 회장은
구자열 회장은 2021년 민간 기업인 출신으로는 15년 만에 국내 최대 무역 관련 경제단체인 한국무역협회 회장(제31대)에 올랐다. 1994~1999년 제22·23대 무협 회장을 지낸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대를 이어 무역업계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평소 무협 회장직에 대해 "매우 영예로운 자리"라는 그는 취임 이래 줄곧 '무보수' 회장으로 뛰고 있다. 국내외 무역애로 현장을 방문해 130건의 규제개선 건의와 대미·대EU 등 통상현안 해결에 매달렸다. 자전거 애호가이자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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