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새로운 증거 없인 '무죄' 뒤집기 힘들어.. 엘리엇의 '1조 소송' 판세에 영향 줄 듯 [이재용 '불법승계 혐의' 1심 무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05 21:22

수정 2024.02.05 21:22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판결을 뒤집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사법 리스크'가 대부분 해소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번 재판 결과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둘러싼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 국제투자분쟁(ISDS)에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2·3심 가더라도 시간 짧아질 듯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죄의 증명이 없다"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등이라며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주요 쟁점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선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에만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합리적인 사업적 목적이 존재한 이상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법원에서 공소사실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항소를 적극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의 '불법 승계'를 주장하며 징역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이 항소할 경우 대법원 판결까지 길게는 3~4년의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다만 1심에서 주요 쟁점이 상당부분 정리된 만큼 2심과 3심이 보다 빠르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까지 햇수로 9년째 재판을 받아왔는데, 2·3심까지 진행될 경우 사법 리스크는 더 장기화될 전망이다.

반면 일각에선 1심에서 3년5개월여간 진행된 106차례 재판에서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음에도 모든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은 만큼 새로운 증거가 없다면 검찰이 항소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이 회장의 1심 판결과 관련해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엘리엇 분쟁' 뒤집힐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법원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인정하지 않은 만큼 정부와 엘리엇의 ISDS 사건에도 변화 기류가 생길지 주목된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하라"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정에 불복해 영국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앞서 PCA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압력을 행사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엘리엇 측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우리 정부가 69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엘리엇이 사용한 법률비용과 지연이자 등을 합치면 지급해야 할 금액은 1300억여원에 이른다. 엘리엇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2015년 양사 합병 당시 박근혜 정부가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에 합병 찬성을 압박했다고 주장하며 1조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었다.

PCA의 판정에는 '국정농단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등에 대한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합병에 위법한 개입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법원이 이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모두 무죄로 판단한 만큼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법원이 양사 합병을 두고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점이나 비율이 불공정해 삼성물산 주주에 손해를 끼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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