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잘못 사용해 민간인 수십명이 사망한 것인지, 또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향해 백린탄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WSJ은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현재 미 국무부가 민간인 사망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폭탄과 미사일을 잘못 사용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침공해 민간인을 포함 1200명을 살해하자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에 무기들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격작전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희생이 커지면서 의회, 특히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제서야 조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전쟁범죄 우려
현재 국무부가 조사 중인 사건 가운데는 지난해 10월 31일 가자시 인근 자발리아 난민캠프에 대한 공습도 포함돼 있다. 난민들이 집중된 이 난민촌 공습으로 125명 넘게 사망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난민촌내 높게 솟은 건물 지하에 땅굴을 파고 은닉해 있는 하마스 사령관 1명을 목표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무부 조사관들은 이스라엘이 당시 공습에 미국이 제공한 약 907kg짜리 폭탄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유엔은 당시 공습으로 민간인 다수가 사망했다면서 이는 전쟁범죄로 분류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당시 어떤 폭탄이 사용됐는지는 언급하지 않은채 지하설비 파괴를 위해 지연신관을 시용하는 등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하마스 땅굴을 파괴한다며 대대적인 공습에 나서면서 지금까지 주로 여성과 아이들 2만8000여명이 숨졌다.
백린탄 사용도 조사
국무부는 아울러 특정 조건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도 이스라엘이 사용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순 레바논 공격에 백린탄이 동원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백린탄은 연기가 많이 나 전시에는 연막탄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민간인들을 향해 쏘는 것은 전쟁범죄로 간주된다. 백린탄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들이 타면서 815℃까지 온도가 높아지고, 사람이 이 백린탄과 접촉하면 뼈까지 탈 수 있다.
레바논 국영통신사는 지난해 10월 레바논 남부 이스라엘 접경 지대에 수차례에 걸친 백린탄 공격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레바논 외교장관은 유엔 레바논대표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문제에 관해 불만을 제기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당시 백린탄 사용을 부인하지 않은채 백린탄 사용이 국제법을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대선 앞 둔 정치적 이벤트(?)
국무부가 이스라엘의 민간인 살상에 민감해진 것은 대통령 선거와도 관련이 있다.
선거가 9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직 표심이 정해지지 않아 당락을 좌우할 핵심 주, 이른바 스윙주의 일부 진보 유권자들을 다독이기 위해 국무부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진보계 유권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전폭적인 이스라엘 지지가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이든이 이스라엘을 강하게 압박하기도 어렵다. 이스라엘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할 때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무부 조사 역시 이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국무부 대변인 맷 밀러는 이번 조사가 미국의 신속한 정책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밀러 대변인은 조사가 신속대응 메커니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 피해 사건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미래에 이런 일이 재발하는 위험을 낮추기 위한 정책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