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나라 교육현실에서는 대학 입학 이전에 전공을 결정해야 하며 나중에 바꾸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로 인해 대졸자 전공의 분포가 사회적 수요와 무관한 경직성을 나타내며, 대졸자의 높은 미취업률 뿐 아니라 졸업 전공과 직업 간 높은 미스매치를 초래하고 있다.
전공 선택이 제약되는 근본 원인에는 학과별 정원 중심의 경직된 학사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대학이 입시 단계에서 학과별 정원에 따라 모집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입학 이전의 전공 결정을 강요받는다. 본인의 적성과 흥미는 물론 대학 전공과 진로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려면 일단 하나를 택해야 한다. 입학 이후 곧바로 전공 선택을 후회하는 신입생이 약 30%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는 당연하다.
더 큰 문제는 입학 이후 대학 내에서 전공을 변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과는 대체로 해당 학과의 여석이 발생해야만 허용가능한 구조이다. 복수전공은 하나의 대안이지만, 복수전공 역시 학과 정원에 따라 제약되는 것이 보통이며 학생 측에서는 원하지 않는 전공을 계속해야 하는 비효율성도 발생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학과 단위 학사운영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다. 미국이나 캐나다(퀘백 외)의 경우 대부분의 대학에서 광역화된 모집단위 혹은 무전공 입학을 시행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충분한 인문교양을 쌓고 다양한 전공을 탐색한 이후 일부 예외적 경우 외에는 자유롭게 전공을 선언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한번 선언한 이후에도 다시 변경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유연한 학사제도는 대학의 목적과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사회적 논의의 산물이다. 미국의 경우 여러 사회적 논의를 통해 인문, 실용, 연구중심적 성격을 혼합한 오늘날의 종합대학 체제를 마련했다. 특히 학생들의 기초적 인문소양을 중시하면서도 자유로운 전공탐색을 장려하는 학사구조가 대다수 대학에 정착돼 있다.
학과 단위 학사구조가 유지돼 온 상황에서 전공자율 선택제가 확산될 때 일부 문제점도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취업이 어려운 전공을 택하는 학생의 수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학사구조가 학생들에게 실제 선호와 무관한 선택을 강제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기초학문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취업하기 어려운 학부 전공자를 양산하는 방식보다는 교양교육을 확대하고 기초학문 연구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또한 학과별 정원 개념을 없애거나 유연화하려면 인사관리나 보상체계 등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운영방식이 필요하다. 대학 자율의 원칙을 존중하는 가운데 변화를 위한 계기 제공 및 컨설팅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학교육은 과거의 틀 속에 학생들을 가둬 둘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격변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도록 핵심 역량을 준비시켜 줘야 한다. 대학 학사구조 혁신을 통해 인적자본 투자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한편,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가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대학교육의 과감한 혁신이 있어야 대학과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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