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광장] '정치는 생물이다'의 오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21 18:34

수정 2024.02.21 18:34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는 생물(生物)이라는 말이 선거철마다 유행한다. 어제의 원수와 손잡거나 철석같은 자기 말을 뒤집는 예상치 못한 책략을 쓰는 정치인들이 하는 변명의 말이다. 그 뜻이 알 듯 말 듯 모호하고 수사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리므로 정치인들이 애호할 만하다. 그러나 이 말이 지닌 원래 의미를 주목한다면 그렇게 궁색한 자기 합리화로 오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오용이 초래할 정치적 폐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헤겔 등 공동체주의 사상가들은 국가와 같은 정치체를 생물, 즉 유기체(organism, living body)에 비유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오랜 세월 내·외부 여러 요소와의 작용-반작용을 통해 천천히, 그러나 거스를 수 없게 스스로 변해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였다. 로크 등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정치체를 인간들의 계약으로 만들어지는 공작품에 비유한 것과 대비되는 생각이다. 자유주의 관점이 정치체는 인간들의 의도로 등장해 기계적으로 작동된다고 보는 것과 달리, 공동체주의 관점에서 정치체는 인간들의 선택을 초월해 거시적 역사의 힘에 이끌려 변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이해된다.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은 오늘에도 이어지며 국가의 작동체계인 정치에서 인위적 전략과 빠른 변화가 더 중요한지, 주어진 역사 맥락에 조응하는 점진적 진화가 더 근본적인지 이견을 낳고 있다.

이런 학문 배경을 고려할 때 요즘 우리나라 정치는 생물보다 오히려 공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평소 입장이 전혀 다르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제3지대 정당으로 뭉쳤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기형적 제도가 예상을 깨고 막판에 살아남아 또 정체불명의 위성정당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지역 연고도 없는 정치인들이 느닷없이 후보로 내리꽂히고 있다. 연륜 있는 정치인은 죄인처럼 배척되고, 정치신인들이 초단기 검증으로 선거판에 뛰어들고 있다. 각 당의 최고 지휘부가 짜는 전국 차원의 전략·전술에 따라 후보들은 마치 장기판의 졸(卒)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장기간 유권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정당 정체성과 정치인-지역주민 연계는 실종되고 득표 공학에 따른 예측하기 힘든 책략만 난무하고 있다. 금방 만들어졌다 또 금방 부서지는 공작품의 세계다. 스스로 자라며 각종 난관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갖춰가는 생물의 세계가 아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의 학문적 의미에 충실해 달라고 요구한들 정치인들에게 마이동풍일 것이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그들에게 이 말은 비상식적 임기응변 책략을 포장하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의 수사적 오용·남발 속에 현 정치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폐해는 너무 클 것이다.

첫째, 공작품 제조 주체인 중앙무대의 각 당 지도부로만 힘이 몰린다. 이런 정치의 중앙화는 권력의 지방 분산을 막고 지역정치를 와해시켜 정치체의 내부 다양화와 안정된 제도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둘째, 정치체가 다양성과 안정성을 잃을 때 극소수 정치인의 변덕에 의한 국정 거버넌스 혼란이 발생한다. 국정은 제도와 규범의 틀에서 예측 가능성 높게 운영돼야만 조화로운 각종 정책효과를 낼 수 있다. 셋째, 온갖 기발한 책략이 정치를 지배하면 정치적 신의라는 가치가 실추되고 이것은 국민의 정치불신을 가속한다. 정치불신이 고조되는 속에선 어떤 국정으로도 국민의 효능감을 채울 수 없어 체제 위기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진정한 생물로서 역사 맥락에 맞춰 서서히, 그러나 도도히 진화하는 면을 지녀야 한다.
깜짝 책략과 신속한 변혁도 때론 필요하나, 정치가 거기에만 의존할 때 상기 폐해는 심각해진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조화가 필요하듯, 정치를 공작품 혹은 생물로 보는 관점들 사이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지금은 불균형이 과하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