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연대 이사로 활동 박기현 EY한영 파트너
엄마 찾아 부산 온 입양인과 인연
7년 전 그때 떠올리면 가슴 먹먹
엄마 찾아 부산 온 입양인과 인연
7년 전 그때 떠올리면 가슴 먹먹
국내 4대 회계법인 EY한영의 부산오피스 책임자로 있는 박기현 파트너는 7년 전 '해외입양인이 헤어진 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전단지를 갖고 친모를 찾기 위해 태어난 부산을 찾은 해외입양인 A씨를 도운 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박 파트너는 전 세계 20만 한인 국외입양인 네트워크 운영과 권익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사단법인 해외입양인연대(GOAL) 이사 중 유일하게 부산에서 활동한다. 지난 1998년 설립된 이 단체는 해외입양인 모국방문 행사와 한국국적 회복, 위기에 처한 해외입양인 무료법률 지원 등에 발벗고 나서면서 2022년 해외입양인 지원 공로로 기관 대통령표창과 지난해 사무총장 국무총리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가 부산오피스 책임자로 있는 EY한영은 2023년 기준 현대자동차, 한전, SK텔레콤, 네이버, 삼성물산, 한화, BNK금융지주 등 굴지의 국내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직전 연도에 8000억원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EY한영은 무엇보다 지역의 기업을 돕고 인재도 키운다는 이념으로 '빅4' 회계법인 중 유일하게 부산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박 파트너는 아직도 7년 전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A씨를 도왔던 하루가 매우 긴박하고 길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당시 한국을 찾은 A씨는 부산역 인근 EY한영 부산오피스에서 그녀를 돕겠다고 자원한 다른 두 명의 여성 자원봉사자를 만나 박 파트너와 함께 친엄마 찾기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30년 전 입양을 도왔던 사회복지단체부터 방문해 보기로 하고 당시 행적을 되밟는 절차를 진행했다. 부산시청과 조숙아로 치료받았던 종합병원, 태어났던 조산원 등을 차례로 동행하면서 동분서주했던 일들이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박 파트너가 적은 'A씨와 함께 한 하루'라는 일기에는 그날 일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2017년 8월 29일 오전 10시, 부산역으로 그녀가 왔다. 음력으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날에. 올림픽이 있던,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라던 1988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해를 넘기자마자 미국 시애틀 중산층 가정에 입양돼 30년을 보냈고, 수소문 끝에 ㈔해외입양인연대라는 단체의 '퍼스트 트립 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다. 친모를 찾기 위해 30년 만에 부산에 왔고,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그녀를 내가 도와야 한다. 사회복지센터, 부산시청, 종합병원, 조산원을 돌며 그녀의 바람을 얘기했다. 사정을 들은 모든 분들이 적극 도우려고 했다. 사회복지사는 마치 친딸을 대하듯 했고, 공무원들은 시청 게시판에 친모를 찾겠다는 그녀의 사연을 직접 게시해 주었다. 우리 모두의 소망과 달리 친모의 행적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을 찾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불안감이 들 때쯤 그녀가 조금은 지친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엄마를 비난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라고. 미국에서 대학도 나오고, 직업도 있고,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나 이만큼 잘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온 거라고. 만약 그녀가 한국 온 걸 안다면 엄마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담담히 내뱉는 그녀와 달리 나도 모르는 격한 감정이 차올라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저녁 7시 남은 일정을 갈무리하고 전남 완도로 향했다. 친모의 고향이 완도라고 한다. 그녀는 그곳에 가보길 원했다. 잠시라도 친모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었나 보다. 부산을 떠나 완도로 향하는 4시간 동안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늦은 밤 가로등만 희미한 시골길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창밖보다 더 어두운가 보다. 숙소에 도착해 그녀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내가 겪은 그 어떤 아픔도 오늘 그녀의 절망에 비할 수 없는데. 다시 혼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 반쯤 감긴 눈으로 겨우겨우 운전을 이어가고 집 근처 다다르니 어김없이 새벽 4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에겐 태어나 가장 슬픈 어떤 날이, 나에겐 그저 지치고 졸린 하루가 되어 이렇게 지나간다.'
박 파트너는 A씨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감사하다'는 엽서와 간단한 시애틀 기념품을 보내왔는데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올 들어 지난 1월 7년 만에 한국 방문 당시 박파트너의 배려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돼 그 후 학업에 매진, 간호사가 됐다는 멋진 소식을 알려왔다고 기뻐했다.
지난달 A씨가 보내온 이메일이다.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저는 2017년 해외입양인연대 프로그램에 참가자로 그때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간호사이고, 3월 말에 한국을 재방문할 예정입니다. 저를 부산과 완도로 데려다주신 것에 감사드리기 위해 직접 뵙거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친엄마를 찾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친절은 제 삶을 바꾸었고 그 후 간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부족한 저를 위해 해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얼마나 멋진 분이었는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 파트너는 21일 "이번 A씨 일을 경험하면서 유년기의 행복한 추억이 평생을 살아가는 행복발전소인데, 전쟁·사건·사고 등으로 부모와의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앞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회계법인 파트너로서의 기쁨은 고객기업이 발전하도록 이끄는 것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큰 행복 중 하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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