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키겠다" 6·25전쟁에 자원입대
'횡성 전투'서 중공군에 맞서싸우다 전사
아들과 손자 병역 마친 3대 '병역명문가'
[파이낸셜뉴스]
'횡성 전투'서 중공군에 맞서싸우다 전사
아들과 손자 병역 마친 3대 '병역명문가'
국유단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일대에서 발굴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 일병으로 확인됐다.
이날 김 일병에 대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경기도 양평군 마을회관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설명, '호국의 얼' 함 전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아들 성균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한평생 기다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셨다"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두 분을 합장해서 꿈에 그리던 해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인의 후손은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모두 병역을 마쳐 2005년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아들 성균씨는 1970년 5월 육군3사관학교 2기 보병 장교로 임관해 1982년 10월 전역 후 양평 지역 예비군 중대장을 역임했다. 손자 진현씨는 1998년 8월 의무경찰로 입대해 2000년 10월 전역했다.
국유단은 2008년 4월 '국군 전사자를 마을 주민이 직접 묻은 장소가 있다'는 지역 주민의 제보를 토대로 발굴에 나서 고인의 유해를 수습했다.
성균씨도 지난 2009년 5월 경기도 양평군 보건소를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으나, 이때는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국유단은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다시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부자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군 당국이 2000년 4월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이래 신원을 확인한 6·25전사자는 총 230명이 됐다.
김 일병은 1926년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결혼해 남매를 낳고 살던 김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가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11월 대구의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홍천, 충주, 제천을 이동하며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던 중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횡성 전투에서 1951년 2월 12일 25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국유단은 "발굴한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해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6·25전사자 유가족(전사자의 친·외가 포함 8촌까지)은 국유단에 전사자 유해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전자 시료 채취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가 제공한 유전자 정보로 전사자 유해 신원이 확인됐을 땐 포상금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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