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연령, 성별을 모두 초월하는 캐릭터가 되길 바랐습니다."
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강아지 얼굴과 커다란 눈망울로 관람객들에게 시선을 보내는 귀여운 생명체가 미술관을 독차지했다. 그의 이름은 '멜로'(Mello). '멜로'는 자화상을 감상하면서 자각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꽃을 관람객에게 건네거나 밝은 세상을 표현한 그림을 좋아하기도 한다.
미국 팝아트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해링턴(45)은 "멜로는 내 분신이자 잠재의식을 반영한 존재"라며 "제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함께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올해 상반기 첫 전시로 현대미술 기획전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를 오는 7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초기 판화를 포함해 대표 회화, 조각, 영상 등 100여점이 전시된다. 아울러 나이키, 몽클레르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한 그의 작업물도 함께 조명한다.
스티븐 해링턴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다양한 색감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예술가로서 장시간 고민했던 삶의 균형, 불안, 잠재의식 등에 대한 사색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잠재의식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멜로'와 야자수를 모티프로 한 '룰루'가 작품에 계속 나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스티븐 해링턴이 모든 사람의 고민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멜로'를 제작했다고 밝힌 것처럼 그의 작품 대부분은 '밝음', '희망', '긍정'을 표현한다. 예컨대 '멜로'가 갈등에 빠지더라도 결국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귀결되거나 일상의 소소한 풍경에 감동하기도 한다.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Getting Away'는 코로나 봉쇄 초기에 처음으로 구상된 작품으로, 해링턴은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시기와 작품을 통해 세상을 탐험할 자유를 모색했다.
보랏빛으로 물든 연작에서는 각종 캐릭터들이 상상에서 비롯된 미지의 세계 혹은 우주로 튀어나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는 이 작품을 최근 몇 년에 걸쳐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친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또 다른 대표작인 'Stop to Smell the Flowers'는 6점의 대형 회화로 구성된 연작으로, 작품의 배경마다 각기 다른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멜로'가 정면을 응시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제작된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잠시라도 멈춰 서서 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일상의 여유와 우리 주위에 있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소중히 하라고 권한다.
'All Around Us'도 긍정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춤을 추듯 몸을 자유롭게 비트는 야자수 '룰루' 사이로 '멜로'가 신나게 장난을 치며 등장한다. 배경에는 '룰루'를 포함해 음양 기호, 조그마한 기하학적 도형들이 가득 차 있다.
무수한 모티프들이 캔버스 전체에 뒤섞이며 그려내는 환상적인 풍경은 스티븐 해링턴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유머를 더해 희화화된 이미지로 묘사함으로써 감정의 작위적인 성질을 마주하고자 했다.
이와 별도인 대형 설치 작품 '들어가는 길'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된 것으로, '멜로'가 미술관에 뚫린 포탈 위로 등장한다. '멜로'는 스티븐 해링턴의 작품 세계에서 맡은 역할을 잘 알고 이에 충실한 케릭터다. '멜로'를 통해 소통하는 장을 열어 대중과의 접촉을 확대한 것이다.
이밖에 길이 10m 규모의 대형 회화 작품 '진실의 순간'은 팔을 뒤로 한 '멜로'가 앞에 펼쳐진 그림을 감상하며 생각에 빠진다. 그림 속에서 탈출한 '멜로'는 하나의 관객으로 전시장에 자리한다. '멜로'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능동적으로 자체적인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스티븐 해링턴은 "이번 전시의 흐름 속에서 관람객들이 현대 예술가로서의 제 삶과 제가 작업하는 창작 과정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길 원한다"며 "저의 첫 미술관 단독 전시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됐는데, 이번 전시가 드디어 결실을 맺게 돼 행복하다"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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