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은행

"외국인 전용앱인데 인증은 한국어에요" 외국인에게 여전히 불편한 한국 금융

박소현 기자,

김나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6.23 17:07

수정 2024.06.23 17:12

[시리즈(상) 갈 길 먼 외국인 금융 시대]
'언어장벽' 공통적인 금융 거래 어려움 지목
비대면 외국인 전용 앱도 '인증' 요구는 '한국어'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도 '한국어'
서울 은행 지점은 한국어 서류로만 안내
"무슨 내용에 내가 서명하는지 몰라" 불안함 호소
오랜 직장생활·영주권 있어도 외국인은 신용대출 못 받아

외국인 금융소비자가 A씨가 한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앱을 이용하기 위한 가입절차 중 한국어로 뜬 '본인인증'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이 외국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본인인증의 경우 한국어로 팝업 창이 떠서 별도의 번역 앱을 사용하지 않으면 본인 인증 절차를 넘어가기 어려웠다. 사진=김나경 기자
외국인 금융소비자가 A씨가 한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앱을 이용하기 위한 가입절차 중 한국어로 뜬 '본인인증'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이 외국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본인인증의 경우 한국어로 팝업 창이 떠서 별도의 번역 앱을 사용하지 않으면 본인 인증 절차를 넘어가기 어려웠다. 사진=김나경 기자

지난 2일 한 시중은행 외국인 특화점포에서 만난 외국인 금융소비자가 본인이 쓰는 금융 앱 등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 금융소비자 B씨는 "한국인 친구 도움 없이 앱을 사용하기 어렵다"면서 "해외송금도 처음에는 모두 은행 지점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사진=김나경 기자
지난 2일 한 시중은행 외국인 특화점포에서 만난 외국인 금융소비자가 본인이 쓰는 금융 앱 등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 금융소비자 B씨는 "한국인 친구 도움 없이 앱을 사용하기 어렵다"면서 "해외송금도 처음에는 모두 은행 지점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사진=김나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1.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에 온 지 5년 차인 올레샤씨(46)는 통장과 카드를 개설하기 위해 한 시중은행 특화점포를 찾았다. 충남 아산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올레샤씨는 "전에는 남편, 친구를 통해 은행 카드 발급 등을 했는데 지금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남편과 친구가 모두 떠나서 통장과 카드를 다시 만들려고 왔다. 내 이름으로 된 카드를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2.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황당흥씨(34)는 외국인등록증을 새로 받거나, 비자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은행을 찾아야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베트남으로 송금을 할 때도 은행 지점에 왔다가, 지금은 베트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앱을 통해 해외 송금을 하고 있다. 황당흥씨는 "개인정보 동의 등 인증을 할 때 한국어로 돼 있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다"면서 "지금은 도움을 받아서 친구들도 해외 송금은 앱을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3. 한국 대기업에서 12년 째 근무하고 있는 자 디러즈씨(39)는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 신용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회사 내 은행 지점에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없었다. 자 디러즈씨는 "영주권이 있어도 (시중은행이 아닌) 상호금융금고에서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들이 국내 거주 외국인 260만 시대에 맞춰 빠르게 증가하는 외국인 고객을 잡기 위한 편의성을 높인 금융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외국인 금융 소비자는 여전히 금융 거래에 불편함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특화점포 '오픈런' 이유 있었다

23일 본지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온·오프라인에서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외국인 금융 소비자는 주로 '언어 장벽'에 대한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일을 하면서 임금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은행 통장을 만들고 체크카드를 발급하기 위해 주말에 문을 여는 외국인 특화지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착 초기 휴대폰 개통이 안 된 경우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불가능한 데다,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면 실명번호 등록 등을 위해 은행 지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외국인 특화점포가 서울 외 지역에 몰린 데다 이마저도 모는 경우가 많았다. 유학생 마리아씨는 "한국 대부분 은행이 한국어로만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교 주변 은행에서도 영어를 하는 직원이 있는 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은행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에 있는 대다수 지점은 한국어로만 운영되면서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은 한국인 지인과 동행하지 않으면 간단한 금융 거래도 불편한 실정이었다. 일반 지점에서는 고객 서명이 필요한 서류도 대부분 국어로 제공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면서 불안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3년 째 근무중인 프랑스 직장인 마리씨(27)는 "서류에 제 명의로 사인을 해야 하는데, 한글로만 제공되니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사인을 정말 해도 될 지 모르겠다"라면서 "영어 서류라도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민통합위원회에서는 금융 접근성이 취약한 고객군에 외국인을 포함해 시중은행들이 공동으로 외국인 특화 점포를 서울에 운영하는 것을 권고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3년 4대 시중은행 외국인 누적 고객수
연도 외국인 누적 고객수
2022년 511만3889명
2023년 538만0422명
2024년 현재 548만0727명
(자료: 4대 시중은행 취합)

■신용대출은 외국인 'NO'… 대안신용평가모형 개발 필요

외국인 고객용 전용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도 예금 조회, 카드 발급, 외화 송금 등으로 제한돼 운영되고 있다. 예·적금 가입 외 신용대출 서비스는 외국인 금융 소비자는 아예 받을 수 없다. 실제 4대 시중은행 중에 현재 외국인 전용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우리나라 고용 시장에 외국인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지만 이들을 위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이 개발되지 않아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득수준이나 자격요건이 우량해도 외국인은 한계가 있다"면서 "본국에 돌아가는 등 여신 부실에 대한 리스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아직 씬파일러 대출도 어려운데 주택담보대출 등과 다르게 외국인에게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까지는 시기 상조"라고 말했다.
언제 출국할 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출 부실 이후 채권 추심을 통한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출을 취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거주 외국인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데다 우수 외국인 인력 유치에 금융 환경이 기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외국인 금융소비자를 위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거주 외국인 증가로 새로운 시장이 커지고 있다"면서 "현재 고객 중에 외국인 대출을 받는 추세를 분석하고 외국인 신용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어떤 식으로 상품을 설계할 지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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