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30개 마약류 중독증 치료병상에 전문의는 1명뿐,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마약중독과 싸우는 사람들<25>]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03 15:19

수정 2024.12.03 15:19

성명제 국립법무병원 중독진료과장
지난달 26일 충남 공주에 위치한 국립법무병원에서 만난 성명제 중독진료과장(정신과 전문의)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동규 기자
지난달 26일 충남 공주에 위치한 국립법무병원에서 만난 성명제 중독진료과장(정신과 전문의)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중 삼중으로 쌓여있는 철창문을 통과해야만 레몬색으로 도색된 병동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병동의 모든 창호는 철창이 쳐져 있었고, 병동을 돌아다닐 때는 1명 이상의 보안관이 꼭 동행해야 했다. 지난달 26일 본지 기자가 찾은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 모습이다. 국립법무병원은 법원으로부터 치료감호를 명령받는 정신질환사범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이는 곳이다. 물론 이들 정신질환사범 중에는 마약류 사범도 포함돼 있다.


국립법무병원은 총 30개의 마약류 중독증 치료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상주하며 마약류 중독증을 치료하는 의사는 성명제 중독진료과장(정신과 전문의) 단 1명뿐이다. 성 과장은 마약류 중독증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전국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의사가 마약류 중독증 치료에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며 "사실 미용 의사 등으로 빠지면 고수익이 보장되는데, 당연한 것 아니겠냐"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마약류 사범 치료
성 과장은 마약류 사범을 진료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약류 중독증이 정신과 질환 중 하나이므로 치료 효과가 즉각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류 치료의 경우 마약류 성분이 반감기를 5~6배 지나는 시점, 즉 1주일 이상 진득하니 치료제를 투입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즉 1주일까지는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며 "보통 환자들은 진통제가 감기처럼 치료제를 투약하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만을 생각하다 보니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려는 환자들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특징은 환자들의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이다. 성 과장에 따르면 국립법무병원에 입원하는 마약류 사범의 70% 정도가 공존질환자, 즉 마약류 중독증 이외에 다른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약류 중독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앓고 있던 다른 정신질환의 증세가 발현될 수도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들 증세에 폭력적인 행동을 동반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성 과장은 "마약류 사범의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이니, 마약류 중독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피해망상과 조울증 등 질환의 증상이 증폭돼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 경우 때에 따라선 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일까. 성 과장은 인터뷰하는 내내 계속해서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등 안전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국립법무병원에서는 1명의 마약류 사범을 진료할 경우 총 4명의 치료진이 환자를 관리한다. 치료를 주재하는 보는 전문의와 치료를 보조하는 간호사,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보호사 등이 그들이다.

마약류 사범에게는 단약을 위해 약물을 통한 치료 행위뿐만 아니라 마약류에 다시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즉 단약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재활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국립법무병원은 이에 발맞춰 복수의 재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매트릭스K'와 '행복48'이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인지행동치료(CBT)의 으로 마약류 사범이 지닌 마약류에 대한 욕구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예컨대 주사기 모형을 반복적으로 제공해 "주사기를 몸에 댔지만 흥분이 되지 않네" 등의 생각을 각인시킨다. 마약류 사범의 경우 주사기 등 마약류와 관련된 물체를 보면 입맛을 다시는 등 욕구를 분출하며 일정한 쾌락을 기대하는데, 가짜 마약류 투약 도구를 줘 사범이 느끼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대감을 반복적으로 감소시켜 기대감을 없애게 하는 방법이다.

성 과장은 "나를 포함해 우리 병원의 치료팀이 환자 개개인에게 조응할 수 있는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인프라를 가진 곳은 국립법무병원이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위해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성 과장은 이렇게 까탈스럽고 복잡한 마약류 사범을 치료하는 일을 왜 하는 것일까. 그는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성 과장은 "국립법무병원에는 법원으로부터 치료감호를 명령받는 이들이 모이는 장소다. 성 과장은 "다른 말로 하면 범법자들이고 또 다른 말로 하면 사회에서 치료에 실패한 이들이 모이는 곳"이라며 "치료가 절실한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회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또 사실 환자들(마약류 사범)과 치료행위를 매개로 교감하면서 느끼는 지점도 많다. 나의 의료행위로 삶의 나락까지 빠졌던 환자들이 치유되는 모습을 보면 나름의 보람을 느끼고 이 직업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법무병원이 마약류 중독증 치료의 국내 허브가 될 수 있도록 연구활동에도 열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립법무병원에 설치된 법정신의학연구소를 직제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법정신의학연구소는 전 국립법무병원장인 조성남 서울시마약관리센터장이 2019년 만든 곳으로 법정신의학회와 함께 매년 학술지를 발행하는 등 마약류 중독자와 관련된 학술연구를 하는 조직이다.
성 과장은 "연구소가 정직 직제로 인정받는다면 우리 병원은 이론적 토대까지 마련되어 마약류 사범들에게 더욱 질 좋은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