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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미래의 민주주의와 성찰적 다원성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03 19:14

수정 2024.12.03 19:30

여의도·용산·서초동 등 3權
제 일보다 남의 일에 관여
‘품격 있는 다원성’ 갖춰야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용산과 여의도, 그리고 서초동은 이 나라 국가권력의 3대 중심지다. 권력의 지나친 집중과 독주를 막기 위해 헌법이 정부, 국회, 사법부의 삼권분립 원리를 천명했고 이를 근간으로 민주적 헌정질서가 이뤄진다. 이들 중 하나가 건강한 견제권력이 아닌 독단적 지배권력이 된다면 국가체제는 방향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국가의 엘리트 권력집단의 직종 이동과 업무 수행의 상호교차성이 지나치게 높은 데 있다. 검사와 판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중앙부처나 대통령실의 고위직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국민이 법조 출신 율사들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연역적 법 논리로 인해 꽉 막혀 있는 국정 현안을 입법으로 풀어 달라는 국민의 기대감 때문이다. 또한 국민은 정부 관료로서의 경륜과 전문성을 입법에 반영해 우리 경제의 미래, 국가경제와 사회 변혁에 기여하리라는 기대에서 이들을 선출한 것이다.

그러나 주거지를 옮긴 이후에도 계속 옛 주소지 주위에서 어른거리거나 직종을 전환하고도 여전히 지난 직종의 일을 되풀이한다면, 이건 문제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 나라 국정에서 벌어지는 많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 같다.

용산이 국회의원 공천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의도의 다수당은 탄핵을 운운하며 서초동을 압박하는 한편, 국가예산 심의·확정권을 무기로 과도한 힘을 행사한다. 서초동의 사법적 판단 하나하나가 정치적 배경에 의해 해석되는 것도 분명 정상이 아니다. 용산과 여의도, 그리고 서초동이 자신의 할 일보다 담장 너머 이웃의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문제다.

역사 속에서 근대사회는 권력의 수렴과 통합의 원리에 의해 운영됐다. 삼권분립은 권력 수렴과 통합 과정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고도로 다원화된 후기 근대사회에 이르러 바로 이 수렴과 통합의 원칙 자체가 한계를 맞고 있다.

정당 등 다양한 이해집단은 자신의 얘기를 할 뿐 상대방의 얘기는 듣지 않으며, 자신들만의 깊은 동굴에 들어가 나오려고 하지도 않는다. 결론을 열어 놓은 정상적 토의는 실종됐고 극단적인 행동주의만 극성이다. 용산, 여의도, 서초동에서 시작된 후기 근대사회 권력투쟁은 길거리와 온라인 공간에서 전 국민이 편을 나누어 참전하는 격렬한 전투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문화역사 석학 굼브레히트 교수는 최근 한 국내 강연에서 이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제안으로 '품격 있는 다원성'(qualified divergence)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다원주의에 민주주의의 미래를 더 이상 맡길 수 없으며, 이제는 지성의 공론장에서 다원주의 시대의 사회적 신뢰와 책무성을 차분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필자의 언어로 다시 쓰면, 현재 우리 민주주의는 '성찰적 다원성'(reflexive divergence)의 사고를 요구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지난 수세기 동안 실험한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주의는 삼권분립 원칙의 와해, 국가비전의 부재, 의견의 극단적 균열과 양극화, 정치 표현의 폭력화, 과도한 행동주의, 인류 역사에서 처음 당면한 사회문제의 실질적 문제해결에 대한 리더십 결여 등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깊은 성찰 없이 다원성의 시대를 맞이한 것은 우리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과 유럽 국가도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시대적 난제다.

5년 단임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과거 어느 시점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은 맞지만, 과연 이들이 현재와 미래의 시대성을 담은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재성찰이 필요하다.
용산, 여의도, 서초동이 빨리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의 권력분립 원리에 대한 미래지향적 대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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