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9단들의 '꼼수 바둑'

      2000.08.02 04:52   수정 : 2014.11.07 13:32기사원문

정치와 바둑은 예부터 많은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정치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바둑을 많이 두는 것도 정치를 바둑의 축소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바둑을 흑백의 조화라 한다.그래서 바둑을 오로지쟁(嗚鷺之爭),즉 까마귀와 백로의 싸움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부터 군자의 4예중 하나로 바둑을 꼽은 것도 조화를 중시한 선인들의 예지가 담긴 것이다.
바둑에서는 모양새가 중요하다.모양새만 찾다가 싸움 바둑에 지는 수가 있긴 하지만 좋은 모양새에 악수가 없다고 한다.모양새가 나쁜 것은 무리수를 두기 쉽기 때문에 곧 화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정치도 조화가 중요하긴 마찬가지다.조화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주의 정신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판은 속수(꼼수)만이 난무하는 것 같다.원래 전문기사들은 묘수보다 정수를 선호한다. 묘수를 잘두는 기사들의 승률이 그렇게 높지 않게 나타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잘못된 묘수는 정확한 착점만 이뤄지면 곧 그 허구가 드러난다.

바둑의 수준은 보통 9단계로 나뉜다.제일 낮은 단계가 자기 것만 고집하는 수졸(守拙)이고 그 다음은 어리석음이 있다는 약우(若愚)다.힘으로만 몰아붙이는 투력(鬪力)이 세번째다.네번째는 약간 재주를 부릴 줄 안다는 소교(小巧)다.이 단계를 지나면 지혜를 쓸줄 아는 용지(用智)에 이른다.여섯번째 단계는 그윽함을 알게 된다는 통유(通幽)다.비로소 체계를 갖추는 단계가 구체(具體)다.체계를 갖추면 앉아서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좌조(座照)의 단계에 이르고 비로소 마지막 단계인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다.

요즘 국회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9단들의 수는 ‘입신’의 처신이 아니라 ‘수졸’의 정치다.정치 9단으로 평가받는 JP의 ‘줄타기’가 민주당의 날치기를 낳았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이면합의설로 역풍을 맞고 있다.정치인들의 묘수가 반상을 화려하게 수놓는 동안 우리국민들의 정치 9단들이 한수 한수를 보는 안목도 크게 넓어졌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음모설이다 뭐다로 시끄러운 정치판에 관전자인 국민들의 충고는 조선후기 대원군 시대 국수 김만수가 남긴 명언 ‘비수불하수’(수가 아니면 두지를 마라)가 아닐까.

/ seokjang@fnnews.com 조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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