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제 의장 인터뷰

      2000.08.08 04:54   수정 : 2014.11.07 13:27기사원문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생존하는 길은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WC)의 조리제(趙利濟·64) 고문은 왜 한국이 동북아 경제통합을 주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9세기말처럼 중국·일본·러시아·미국 등 4강에 이리저리 채일 것이 아니라 한국,나아가 통일된 한반도가 ‘힘있는 총무’ 역할로 동북아 안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조고문은 이른바 ‘두만강 프로젝트’의 산파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91년 ‘동북아시아 경제포럼’(NEAEF)을 설립해 동북아 협력 모색에 앞장서고 있다.
동서문화센터에 사무국을 둔 NEAEF의 한국위원회는 남덕우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21세기 한민족 공동체의 역할은 뭔가.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20세기 후반부터 바깥으로 뻗치는 힘이 우세해졌고 이것이 세계화로 나타났다. 팽창하는 힘이 있는 반면 안으로 뭉치려는 힘도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중화경제권 등 지역주의가 좋은 예다. 이런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해 열린 지역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즉 미국과 교류하면서 중·일·러시아 등 주변 강국과 좋은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중국은 시장,일본은 자본과 기술,러시아는 자원을 한국에 제공한다. 주변 열강 사이에서 촉매제 역할을 하는 강한 ‘총무’가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동북아 경제통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정치 보다는 기능적인 협력이 우선이다. 한국과 중국이 항공개방 협정을 맺으면 일본이 따라오고 하는 식이 될 것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시베리아엔 막대한 자원이 묻혀 있다. 궁극적으로 이 자원이 한국으로 와야 한다. 시베리아 자원은 21세기 일본에도 생명줄이다.

―동북아 개발은행(NEADB) 설립에 대해.

▲동북아 기반시설 개발을 위해 NEADB가 필요하다. 은행이 필요자금의 4분의 1 정도만 모으면 나머지는 채권 발행 등으로 국제 자본시장에서 끌어 모을 수 있다.

―NEADB에 대한 국가별 입장은 어떤가.

▲민감한 문제로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은 돈을 많이 내야 하니까 대장성에서 반대한다. 그러나 런던경제대학의 모리시마 미치오 교수처럼 다른 주장을 펴는 이도 있다.그는 최근 ‘일본은 왜 몰락할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추구해 온 ‘탈아론’(脫亞論)을 버리고 ‘접아론’(接亞論)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일본은 북한과 배상문제 등이 걸려 있다. NEADB 같은 국제 금융기관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중국은 NEADB가 결국 북한 지원용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이런 점은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실상 한국 정부는 NEADB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NEADB 본부 유치에 중국이 가장 적극적인가.

▲은행 설립에 중국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톈진은 본부 유치 인센티브를 겨냥해 중앙정부에 압력을 넣는 등 적극적이다. 중앙정부도 호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은 나름대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아무 반응이 없다. 서울이 전략적 위치를 활용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은행 출범 결정이 급선무다.

―두만강 개발계획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난 90년 중국 장춘(長春)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이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때 북한이 팀 스피리트 작전을 놓고 반미 발언을 하겠다고 고집해 애를 먹었다. 결국 북한은 연설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러나 중국과 당시 소련이 관심을 보이자 북한도 나진-선봉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유엔개발계획(UNDP)에 요청해 타당성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두만강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조고문은 박사 학위가 여럿이다.미 시카고·조지 워싱턴대와 일본 게이오·도쿄대에서 각각 다른 분야의 학위를 받았고 시카고·미시간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5개 언어를 가르치는 네덜란드의 예를 들어 언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주변국을 먼저 알아야 한국이 촉매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네덜란드처럼 ‘작지만 강한 나라’가 그가 바라는 한국의 모습이다.
그 자신은 영어·일어·중국어·스페인어·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가 유창하다.

▲조리제 고문 약력

△1936년 경남 함안 출생

△시카고대 박사(사회학)

△조지 워싱턴대 박사(행정학)

△게이오대 박사(경제학)

△도쿄대 박사(인구학)

△시카고대, 미시간대 교수

△한국 부흥부 근무

△말레이시아 총리실 고문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부총재, 총재, 고문(현재)

△동북아 경제포럼(NEAEF) 의장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고문/동북아시아 경제포럼(NEAEF) 의장
/ paulk@fnnews.com 곽인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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