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8.15 04:55   수정 : 2014.11.07 13:20기사원문

“원 없이 골프나 신물나도록 쳐봤으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 해보지 않은 골퍼는 없으리라.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건가. 그것은 4박자가 갖춰져야 한다.

첫째가 시간이고 둘째는 지갑,셋째는 건강,넷째는 골프친구다.

세 개중에 하나만 빠져도 그 꿈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 기회를 나는 잡았다.

호주 정부 초청으로 그곳에 가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치고 개인적으로 10일간 호주에 더 머무르기로 했다.


10일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망설임 없이 결정한 것은 골프!

시드니 시내 복판엔 온갖 스포츠시설이 들어찬 드넓은 공원 무어팍이 자리잡고 있다.

18홀 골프코스와 나이터 시설을 갖춘 확 트인 연습장이 빠질 수가 없지.

무어팍 골프코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서로브레드 모텔로 숙소를 옮겼다.

10일 장기투숙비가 28만원,무어팍GC 그린피가 2만1000원.

시간과 지갑은 해결됐고 건강은 자신 있고 골프친구는 프로숍에 얘기하면 짝을 지워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호주에서는 겨울이다.

시드니의 겨울 아침 저녁은 쌀쌀하지만 해가 뜨면 상큼한 우리나라 가을 날씨다.

첫날 아침,마침내 이룬 부푼 꿈을 안고 1번홀 팅그라운드에서 숲 너머 보이는 시드니 타워를 향하며 티샷한 볼은 마음속에 그린대로 빨랫줄처럼 날아간다.

프로숍에서 짝 지워준 호주 주둔 영국해군 장교의 샷은 숲 속으로 처박힌다.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찾아온 영국 중학생의 드라이버샷은 쪼로.

오후에 또 한 라운드. 첫날 36홀을 돌았지만 심신은 쌩쌩해 저녁엔 서리힐 바에 가서 한잔 제끼며 기분을 냈다.

이튿날은 이 골프장 매니저와 라운드하게 됐다.

함께 라운드하며 그가 들려주는 얘기 하나.

“구름이 몰려와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골프를 포기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오는 건 호주 골퍼들,빗방울이 굵어져 좌르르좌르르 쏟아지면 들어오는 건 한국 남자,일본 남자,폭우에 천둥·번개까지 가세해야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건 한국 여자,일본 여자!”

둘째날은 18홀을 하고 저녁나절 연습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셋째날도 넷째날도 한 라운드씩 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좋은 골프가 그만 시들해지는 것이다.

다섯째날은 시드니 젊은이 둘과 함께 라운드를 했는데 대여섯 홀을 남기고는 그만 빨리 끝나기만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꿈이,하루 36홀씩 열흘 동안 돌겠다던 작심이 닷새만에 풍선 바람빠지듯이 없어지다니!

호텔에 누워 원인분석을 해본즉,스태미나는 이상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버디를 잡아도,파5에 투온을 시켜도,79타를 쳐도 폼잡을 데가 없다.


둘째 돼지고기 값이 폭락하면 돼지고기 맛이 없어지듯이 골프도….

결론은 가끔씩 이나마 어렵게 부킹해서 친구들과 낄낄대며 라운드하고 내 평생에 언젠가는 신물나도록 골프할 기회가 오겠지 하는 꿈만 갖는 게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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