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구조조정 ´무뎌진 칼´
2000.12.22 05:32
수정 : 2014.11.07 11:43기사원문
‘노조 승리,정부 패배’.
정부와 금융노조는 22일 오전 11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끝에 지주회사편입 4개은행의 자력회생기간 보장 등 3개 쟁점사항에 합의함으로써 평화·광주·경남·제주은행은 파업을 철회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4개 은행의 파업을 막기위해 금융지주회사 편입후 상당기간 독립성을 부여해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위한 기능재편(소위 리셔플링) 시점을 8개월이나 뒤로 미뤄버리는 등 금융개혁전선에서 크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려주는 입장에 선 정부가 오히려 저자세로 일관한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국민·주택은행 노조는 이번 협상에서 합병백지화가 관철되지 않았다며 파업에 돌입해 서로가 ‘부분 타결’로 결론지었다.
◇노·정 합의 내용=정부와 노조는 이날 합의에서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의 기능재편을 오는 2002년 6월까지 유예하고 지주회사 편입후에도 자회사로서 최대한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결국 평화·광주·경남은행 등 3개 부실 은행은 자신들의 은행 간판을 이 시점까지는 그대로 달고 있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다만 정부주도 금융지주회사는 오는 2002년 3월말까지는 컨설팅 작업을 계속하여 기능재편 등 최종결과를 도출,이를 토대로 2002년 6월말 이내에 노사간 협의를 통해 기능재편을 완료키로 했다. 정부는 당초 2001년 10월에 자회사로 편입된 은행들을 기능별로 재편하면서 조직과 인원을 대폭 정리해 새로운 체제로 거듭날 계획이었다.
한편 노·정은 인력감축 여부를 노사간 자율적인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되 반기별로 양해각서(MOU) 이행상태를 점검해 추가적인 공적자금의 투입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국민·주택은행 합병에 대해서는 지난 7월 노·정 협상에서 합의한 ‘노·사간 자율적 협의 존중’이라는 틀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금융구조조정 차질=이번 노·정 합의로 일단 평화·광주·경남은행의 금융지주회사 편입 장벽은 해소됐지만 당초 계획보다 8개월 정도 통합이 늦어져 그만큼 구조조정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 특히 이들 은행에 투입되는 5조5000억원 정도의 공적자금중 일부는 2002년 6월까지 존속되는 과잉 인력과점포 유지비로 흘러들 수밖에 없어 그만큼 ‘국민세금’이 낭비될 전망이다.
특히 구조조정의 단계마다 노조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노조가 쟁취한 큰 과실이다. 인력감축을 노·사 협의하에 결정토록 한 데다 2002년 6월 기능재편때도 노·사 협의를 명문화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구조조정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을 부담해야하는 국민들로서는 형편없이 부실화된 은행을 감량도 시키지 않고 왜 정부가 계속 뒷돈을 대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량은행 합병문제도 노·사간의 자율적인 협의에 맡기기로 한 것은 그동안 정부가 금융구조조정 완수라는 일정에 쫓겨 주택과 국민은행장에게 ‘보이지 않는 손’을 행사해왔으나 이제는 그것마저 불가능하다. 국민·주택은행장은 두 은행을 합병할 경우 노조와 힘든 협의를 거쳐야 하므로 두 은행간의 합병은 다시 불확실성을 안게 됐다.
결국 노·정 합의는 6개은행 파업을 2개은행 파업으로 막았지만 파업의 여파는 2개 대형은행 파업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 과정에서 지나친 비용을 치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rich@fnnews.com 전형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