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협조땐 中공사 수주”

      2002.04.21 07:47   수정 : 2014.11.07 11:54기사원문

지난 98년 기업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동아건설 최원석회장이 ‘경영 재도전’이라는 인생 최대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과연 화려하게 재기할 것인가, 아니면 경영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재도전했다가 실패한 경영자로 낙인찍힐 것인가.

한 때 재계 5위의 그룹 총수였던 최회장은 경영권을 내놓은 후 재계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었다. 그러나 파산선고가 내려진 동아건설의 소액주주들이 유례없이 최원석씨를 지난 19일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추대’하면서 최회장은 재계의 주요 관심 인물로 부상했다.

경영복귀 후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최회장을 본지가 21일 서울 장충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단독인터뷰를 했다. 최회장은 국제통화기금체제(IMF)에서 유동성 위기로 ‘낙마’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경영복귀 후 심정, 향후 활동계획 등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 4년만에 복귀하게 됐는데 소감은.

▲가슴 속 깊이 맺힌 한이 다소 풀리는 것 같다. 선친이 어렵게 창업한 회사를 자식이 망쳐놓은 것 같아 그동안 하루도 편히 잠을 잔 적이 없다. 지난 70∼80년대 중동의 황폐한 사막에서 황사가루를 마시며 일군 회사인데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소액주주들이 뜻을 모아 무능한 이 사람을 상임이사로 추천해준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동아건설 회생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

―지난 98년 퇴진 후 어떻게 생활해왔는가. 한때 고부갈등으로 가정에 어려움도 있었는데.

▲주로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했다. 경영 부실에 대한 자책감으로 퇴진 초기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싫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모친(임춘자여사)과 부인(장은영씨)의 갈등으로 송사까지 간 적이 있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친의 지극한 사랑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있다. 모친은 수시로 집에 와 식사를 직접 챙길 정도로 자식을 아끼고 있다. 지난 4년간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데는 부인의 힘이 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인과 하루에도 두번씩 교회를 찾았다.기도를 통해 아픈 마음도 달래고 동아건설 회생을 위한 기원도 했다.

―동아건설이 국내 ‘워크아웃기업 1호’임에도 불구, 파산까지 갔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도 후 동아증권, 서원레저, 부천 동아시티백화점 등의 자산을 매각할 때 ‘헐값 매각’을 한 것이 유동성 위기를 심화시킨 것으로 본다. 이들 물건의 자산가치는 3000억원을 웃돌았는데 당시 상황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여서 제 가격을 받지 못한 것이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법원의 파산결정이 내려지기 전, 동아건설 기업가치에 대한 한 회계법인의 심사가 있었다. 그 때 ‘계속 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게 평가돼 파산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당시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지난해 4월 초, D일보 등 언론에서 ‘동아건설 5000억원이상 저평가, 회계부실 우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언론에서는 S회계법인이 동아건설의 계속 기업가치를 1조2555억원으로 평가, 실제 가치보다 5000억원 낮게 심사해 오류가 예상된다는 보도를 했다. 당시 언론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로 동아의 기업가치 평가문제는 핫 이슈였다.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당시 회사를 떠난 상태였지만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파산 결정 후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소액주주모임이 결성돼 동아건설 회생을 위해 활동해왔다. 이번에 최회장의 경영 복귀도 소액주주 모임을 통해 가능했는데 이 모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액주주모임인 진리를 찾는 사람들(진찾사)은 동아 부도 후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애환을 달래다 자연스럽게 결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 중에는 동아건설 부도 후 주가폭락으로 집까지 은행에 저당잡힌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부실을 초래한 이 사람에게 다시 한번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준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들은 ‘사지’에서 이 사람을 벗어나게 해 준 은인과도 같다.

―지난해 12월 중국 수리부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왔는데 어떻게 방문하게 됐나.

▲남수북조 대수로 사업은 중국의 최대 숙원사업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96년부터 대수로사업을 계획했으며, 그 때부터 수차례 중국을 오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의 물문제 해결을 위해 비상이 걸린 중국정부가 급하게 이 사람을 초청했다. 당시 베이징에서 중국 수리부 등 관계자들을 다수 만났다.

―중국정부가 남수북조 대수로공사 국제입찰을 하게되면 동아건설이 수주를 할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선 세계 어느 건설회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중국은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공사 시공기술을 인정했기 때문에 공사수주가 유력하다고 본다. 다만 아직 동아건설이 파산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걸림돌이다. 그러나 22조원에 달하는 매머드사업으로 ‘국익’이 걸린 공사이기 때문에 채권단 등에서 강제화의 등에 협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부실경영 등의 무능함을 보였으나 채권단 등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사력을 다해 동아회생을 위해 뛰겠다.

―남수북조 대수로공사 협의를 위해 22일 출국하는데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신의’를 중시하는 국가이다. 지난 97년 중국 수리부 관계자들을 초청, 리비아공사 현장을 견학시킨 적이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장 견학 후 한족, 조선족 등 100여명을 리비아 공사현장에 투입시키길 희망했다. 자국 근로자에게 PCCP대수로관의 생산기법과 관로매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제안이었다. 그 때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이로인한 친분관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번에 중국을 방문하는 것도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

―항간에는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위원회 위원장과 최회장이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

▲카다피 위원장과는 지난 80년대 중동국가 개척을 할 때 처음 알게됐다. 카다피는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답게 뚝심과 배짱이 두둑한 인물이다. 당시 리비아 공사를 수주할 때 뱃심하나로 카다피를 감동시킨 적이 있다. 지금도 그와는 친형제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카타르, 쿠웨이트 등 해외공사 수준활동 계획이 있는지. 또 리비아 신규공사 수주계획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오는 2003년 쿠웨이트∼이란을 연결하는 1100㎞의 대수로 공사가 계획돼 있다. 이 대수로공사는 리비아 공사와 유사한 점이 많아 공사입찰시 낙찰이 유력하다. 또 2004년 리비아 4,5차 공사와 중동지역 최초로 올림픽 유치를 위한 카타르의 26개 종합운동장 건립공사 규모가 2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발주하는 공사에 모두 입찰할 계획이다. 그동안 동아건설의 기술력은 중동지역에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공사 수주가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동아 회생을 위해 채권단과 노동조합 등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채권단 등의 협조를 구하기위한 대책은 있는지.

▲동아건설의 회생 여부는 앞으로 강제화의를 받을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강제화의를 받기위해선 채권단의 75% 찬성이 있어야 한다. 채권단에서 볼 때 현재의 동아회생 방향이 그리 밝지않더라도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주었으면 한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공사를 수주할 경우 국가이익에 영향을 미치기때문에 채권단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번이 인생의 기나긴 역정 중 마지막 기회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그동안 동아 회생을 위해 큰 힘을 보태주고 있다.
노조가 무능한 이 사람을 지원해주고 있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 pch7850@fnnews.com 박찬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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