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켜야 한다

      2003.06.13 09:39   수정 : 2014.11.07 16:55기사원문

“약속은 지켜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중학교 사회교과서에서 배운 구절이다. 로마법전에 나온 것으로 외웠던 기억이 난다.

마음에 들어 깊이 새겼다. 이후 약속을 하면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쓴 기억도 있다.
상대방이 깨는 바람에 엄청난 손해를 본 뼈아픈 경험도 있다. 그래서 생긴 ‘편견’이 있다면 한국 사람은 약속을 깨는 데 관대하다는 것이다.

정부 과천청사는 금연빌딩이다.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나 금연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건물 층간 층계에서 담배를 피우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 사소한 일에서 약속이 쉽게 깨지는 현장이다. 때문에 건물을 오르내리다 ‘담배연기’를 마셔야 하는 불편이 금연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보상이다.

사소한 것을 중시하지 않는 국민이 ‘큰’ 약속을 지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정부와 재계간의 신랄한 신경전을 보면 참여정부가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를 자주 생각한다.

삼성전자가 중국으로 가지 않게 하고, 반도체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수도권 공장증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고용효과를 들먹이며 수도권 규제 완화 요구에 동참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도 고심하는 인상이 역력하다. 안풀어주면 산업경쟁력 제고라는 과제를 실행하지 못하는 게 되고, 풀어주면 참여정부의 대원칙인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 지방분권화에 어긋나서다.

전자는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재계에 한 약속이고 후자는 대통령이 지난 선거에서 한 공약과 궤를 같이 한다. 어느 것 하나 쉽게 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중을 따져 하나 기울어짐이 없다.

기업들의 요구대로 공장증설을 허용할 경우 수도권과 지방의 고른 성장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고, 억제정책을 고수하면 산업경쟁력 제고는 물건너 간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원칙과 산업경쟁력 제고를 함께 고려하되 연말 이전에 가급적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정책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 재원확충방안, 지방의 산학연 연계체계 구축 방안 등을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두 가지를 다 지킬지, 아니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다 못지켜 여론이나 관련 기업,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뭇매를 맞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때문에 이제는 정부를 압박하기보다는 생각할 시간을 줄 때라고 믿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자체장들과 공장증설 허용을 주장한 기업들도 자신들이 한 약속을 실천할 수 있는 실행계획을 짤 시간을 가지라는 말과 같다.
약속은 한쪽만 지키는 게 아니라 쌍방이 지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john@fnnews.com 박희준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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