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회장, 신입사원 면접엔 반드시 참석
2003.06.29 09:44
수정 : 2014.11.07 16:21기사원문
“‘삼성은 인재의 보고(寶庫)’라는 말보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지난 1982년 보스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수여 기념강연중 말한 이 한마디에는 ‘마산협동정미소’로 시작된 경영인생 이후 일관된 그의 철학과 신조가 녹아있다.
이회장의 인재(人材)제일주의를 간추려보면 인간을 존중하는 여건을 만들어 그로 하여금 개인과 사회의 원동력이 되게하는 정신이다. 이런 이회장의 경영원칙은 산업화과정에서 인간보다 자본과 생산설비 확보에 역점을 뒀던 당시 국내 기업들에는 일종의 ‘객기’내지는 ‘허세’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의 냉랭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1957년 공개채용제도를 채택해 이런 인재제일주의 실천의 기반을 마련했다.
혈연이나 지연, 학벌에 관계없이 숨어있는 인재를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회사에 아무리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을 때라도 신입사원 면접만큼은 빠지는 일이 없었다. 또 이회장은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인재양성을 위해 지난 82년 삼성종합연수원을 총 공사비 50억원을 투자해 준공, 인재양성의 보고를 마련했다.
이회장은 사람을 고르는 것만큼 사후관리에도 남달랐다. 그래서 주위의 지인들은 흔히 그를 일컬어 용인(用人)의 귀재라 말한다. 그는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지도력과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모든 책임을 맡겨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다. 하지만 그런 지도력과 능력이 부재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질타를 서슴지 않았다.
삼성이 중앙연산장치(CPU)를 개발할 때 담당 상무가 당시로서는 거액인 1000만원을 투자해 개발에 성공할 자신이 없다는 말에 그는 “이봐, 당신은 상무요, 상무! 그정도 실패할 권리는 주어져 있는 거요. 그 정도의 모험도 할 수 없는 인물을 나는 상무로 앉힌 기억이 없소”라며 호통을 쳤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갖추지 못했는가’를 사람평가의 잣재로 삼았던 그의 확고한 신상필벌의 원칙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이같은 엄정한 신상필벌의 원칙이 있었기에 오늘날 삼성은 ‘인재의 양성소’, ‘인재사관학교’라는 별칭을 당당히 내걸게 됐다.
구학서 신세계백화점 사장, 홍성일 한국투자신탁증권 사장, 이명환 동부그룹 부회장,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 조영철 CJ39쇼핑 대표 등이 모두 이병철 인재사관학교가 배출해낸 재계의 거목들이란 점은 오늘날 삼성의 인재경영의 위력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