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를 살리자/전창호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2003.11.24 10:24   수정 : 2014.11.07 12:15기사원문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2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가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이다. 과학기술이 사회문화의 발전과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국가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21세기 선진 과학기술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과학기술부와 과학기술중심사회기획위원회는 이달 초순부터 광주, 부산, 대전, 대구, 서울 순으로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 방안’에 대한 지역별 공청회를 열어 왔다.

공청회에 제시된 방안은 ‘과학기술의 국가발전 기여 강화’, ‘과학기술과 사회의 연계 강화’, ‘과학기술 핵심역량 강화’라는 세 가지의 전략 분야로 나뉘어 모두 10개 정책과제, 46개 세부시책으로 짜여 있다. 여기에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반영하여 과학기술부 안으로 만든 다음,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정부의 정책으로 입안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 한다.

그 방안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삶의 질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10위권, 국가 과학기술경쟁력 세계 8위를 목표로 한 다방면의 과제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에는 ‘차세대 성장동력 집중개발’, ‘정보기술(IT)기반 신산업 육성’, ‘산학연 네트워크 활성화’ 등 이미 많이 들어온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민군겸용 기술 개발’, ‘이공계의 공직진출 확대’와 같이 이미 시행 중이거나 확정된 정책도 섞여 있다.
심지어는 비현실적이고 막연하여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구상도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출연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연구용역을 조기에 완료한 경우 일정 기간 자유롭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Work Month(가칭) 시스템’의 도입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고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는 시책이다. 전반적으로 재검토되고 보완되어야 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도 반가운 제안이 여러 가지 눈에 들어온다. 말하자면, 연구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기업연구원 소득공제와 연구연가 지원’, 이공계 석·박사 학위를 가진 30세 미만의 젊은 과학기술인을 국방관련 연구개발 업무에 활용하는 ‘과학기술사관제도’, 이공계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에게 전문인력으로 근무하게 하면서 유사시에만 동원하는 ‘전자군복무제’, 최우수급 이공계 대학원생을 선발하여 지원하는 ‘국가연구원생 제도’ 등이 우선 관심을 끄는 새로운 제도다. 그리고 ‘연구개발 결과물에 따른 인센티브 보장’, ‘이공계 교육비 경감’, ‘이공계 우대와 유인’ 등의 기존의 제도와 정책을 확대·개선하는 방안들도 눈에 띈다.

이러한 제안들이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의대에 지원하기 위해 자퇴하는 공대생이 늘고 이공계 입학설명회 분위기가 썰렁한, 소위 이공계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IMF 사태의 여파로 생기게 된 이공계 기피 풍조는 여러 해에 걸쳐 뿌리를 내렸다. 그 뿌리는 이공계 출신자들이 느끼는 불충분한 보상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정한 장래에 대한 불안심리에 박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인들에게 적정한 보상과 대우를 제공함으로써 박탈감과 불안감을 씻어내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 보상과 대우는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와 같은 단편적인 대응책으로는 충족시킬 수가 없다. 더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대책이 절실하니 이번에 제시된 여러 가지 방안에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치유하지 못하면 과학기술중심사회는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중심사회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공계를 살리는 것은 과학기술중심사회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인 과제다. 이번 방안에 포함된 과학기술인의 처우나 연구 환경에 관련된 시책들은 앞으로 진행될 어떤 과정에서도 소홀히 다루거나 뒤로 미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차제에 이러한 안들을 모두 종합하여 별개의 정책과제로 체계화시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싶다.

과학기술부에서 제안한다고 해서 과학기술부만의 업무일 수는 없다.
관계 부처간의 협의, 법이나 제도의 정비 등 정부 정책으로 입안하고 시행에 들어가기까지 거쳐야 할 절차가 많겠지만 이공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정부는 모든 역량을 모아주기를 바란다.

/전창호 한양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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