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 특별기고

      2004.01.04 10:35   수정 : 2014.11.07 22:37기사원문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 정치자금의 불법적인 조달과 지출 실태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준헌법기관이라는 각 정당이 사과상자와 쇼핑백도 모자라 현금이 가득 실린 트럭을 받는 ‘차떼기’ 방식으로 음성자금을 마련하고 배분해 왔음이 낱낱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또 우리의 정당들은 후원회를 통하여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편법적인 영수증 처리와 분식회계를 일삼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인으로부터 정치자금법상 상한액을 넘는 목돈을 받으면서도 개인명의나 계열사 명의로 편법적인 영수증 처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당의 모금한도가 찬 경우에는 시도지부에서 영수증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내부거래를 하는가 하면, 후원금을 받은 시점에 상관없이 영수증 처리를 하기도 하고 또 후원금중 일부만을 축소하여 공식 회계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면 왜 각 당은 범죄집단과 같이 불법자금을 조성해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돈먹는 하마’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정당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의 정당은 서구사회와 달리 그 정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조직이 아니라 권력자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하여 위로부터 조직한 구조다. 효율적으로 유권자의 지지를 동원하기 위해 중앙당은 물론 지구당에도 대규모의 사무국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당원으로부터 당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입비를 주면서까지 당원으로 등록시켜 당원의 수가 100만명이 넘는 거대 정당이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정당은 돈이 없으면 조직이 붕괴될 수밖에 없고 조직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돈을 조달하여 풀어야 하는 그러한 구조가 됐다.

지난 2000년 주요 정당의 중앙당이 인건비, 사무소 설치 및 운영비로 지출한 기본경비가 260억원에 달한다. 지구당 역시 매달 2000만원 정도의 지구당 운영경비가 들어가고 있으니 지구당의 수를 600개로만 잡아도 매달 120억원, 1년에 1400억원 이상의 경비가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선거때가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불법으로 마련된 자금이 지구당에 지원되고 이 돈은 또 선거때마다 한 밑천을 잡는 품삯당원들에게 지출된다. 제대로 된 회계처리 없이 돈이 오고가는 사이 배달사고가 나기도 한다.

또 정당연설회나 합동연설회에 유권자를 동원하기 위해 돈이 지출되기도 하는데 연설회를 1회 개최하는데 보통 1인당 5만원씩, 총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당 또는 후보 연설회를 시·도마다 2회 이내와 구·시·군마다 1회 개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 그 자금이 얼마만큼 될지는 상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선거에서 정당 또는 후보연설회, 그리고 합동연설회를 모두 포함하면 군중동원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군중동원의 조직선거가 더 이상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정당은 기업에 자금을 요구하게 되고 반대 급부로 기업에 특혜를 주려고 정책을 왜곡하는 일까지 자행한다.

기업은 현금을 마련해 정치자금을 대기 위해 허위전표를 만들고 있다. 그 결과 갈수록 경제는 멍들고 세계 133개중 50위라는 부패인식지수가 말해주듯이 우리는 ‘부패 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에 경제가 발목잡히는 일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고비용 정당’의 구조를 깨지 않고는 불법자금에 의존하는 관행을 없애기 어려우므로 중앙당은 과감히 사무국을 축소하고 원내정당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리고 지구당 역시 국회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직을 분리해 국회의원이 지구당을 관리하는 데에서 오는 부담과 전횡의 가능성을 모두 줄여야 한다. 그 대신 지구당은 경선을 관리하고 각종 선출직 및 당원들이 가끔씩 모여서 정치적 의견을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비상설기구로 전환하여야 한다.

또 정당이 당원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수당을 제공하거나 음식물 및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 각종 연설회는 막대한 개최비용에도 불구하고 일반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들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데에는 아무런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과감히 폐지되어야 한다.
그 대신 미디어 선거운동을 확대하여 유권자들이 안방에서도 후보자들의 보다 용이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어 온 정당회계에 대해서도 기업이나 정부조직 수준의 기준을 설정하여 영수증 처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또 수입과 지출내역을 공개하도록 해 정당과 당원 모두에게 이제는 과거와 같이 당을 운영할 수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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