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핌피 공존하는 현실
2004.01.12 10:37
수정 : 2014.11.07 22:18기사원문
3000t이 넘는 쓰레기를 실은 ‘모브로 4000호’는 지난 87년3월 미국 뉴욕 근교 한 마을을 출발했다. 지역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이 없자 쓰레기를 받아줄 곳을 찾아 무작정 항해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멕시코,바하마 등 인접국은 물론 텍사스,노스캐롤라이나,미시시피,플로리다,앨라배마 등 자국 내 다른 주들도 이 배의 입항을 거부했다. 6개월간 6000마일을 항해하던 이 배는 결국 출발지로 되돌아왔다. ‘님비’(Not In My Back-Yard)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해서 생겼다. 최근들어 쓰레기처리장 등 혐오 시설물을 내 고장에 설치하지 말라는 주민들의 이기적인 반대 운동인 님비,지역에 도움이 되는 선호 시설을 자기 고장에 유치하려는 주민들의 운동인 ‘핌피’(Please In My Front-Yard)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님비라고 무조건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시설물이 앞 마당에 들어올 경우 생명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도 충분히 반대할수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중요한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 님비는 애향심 내지 자기보호를 위한 정당방위적 행동으로 볼수 있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는 혐오시설을 대승적 차원에서 지역민들이 합의를 해서 유치해낸 사례도 있다.
문제는 원자력발전소,추모공원,납골당,정신병원,장애인복지시설 등은 반드시 필요해 어디에든 반드시 건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이기주의로 인해 건립할 수 없으면 결국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위험·혐오시설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들에게 그 불이익에 대해 충분히 보상하고 결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도 희생에 따른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고 국익과 공익에 도움이 되었다는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밀실에서 몇 사람이 결정하고 주민 의사를 무시해 지역민들에게 불신감을 주었다. 해당 시설의 입지로 인한 재산가치 하락에 대해 대응책을 제시해야 주민들이 반발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시설이 입지한다면 일반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사실에 대한 검증 결과를 알리고 향후 안전한 관리방법에 대한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미국 뉴욕시의 공평부담기준(Fair Share Criteria)은 문제 해결의 좋은 사례다. 도시계획시설을 신설·확장·축소·폐쇄하고자 할 때 도시 전체가 부담과 이익을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에 별도 보상금을 지불하거나 세금 감면,거주환경 개선,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손해를 보전하고 비용은 정부예산으로 부담해 공평성을 확보하는 내용이다.
캐나다는 님비시설 입지시 ‘입지선정 작업반’(Sitting Process Task Force)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주민·마을위원회·도시위원회·공무원·시설계획입안자·전문가그룹 등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여한 집단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일단 밀어붙이고 보는 우리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