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10부제’실시하자/이상곤 에너지경제연구원장

      2004.04.18 11:04   수정 : 2014.11.07 19:09기사원문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작고 약한 것보다는 크고 강한 것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듯하다. 작고 약한 것은 효과도 없고 불편만 가중된다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 고유가 행진에 비하여 에너지소비 절약대책이 구태의연하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에너지위기나 유가인상 소식이 전해지기만 하면 단골메뉴로 자가용 차량 10부제가 등장하곤 했다. 시민들은 에너지절약을 위한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볼모로 매번 출퇴근을 불편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그동안 고유가 상황을 숱하게 많이 겪었는 데도 똑같은 전례만 답습하고 새로운 개선책이 제시되지 못했으니 그런 불평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다고 자가용 차량 10부제 시행에 따른 경제적 효과마저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2002년 에너지 총조사 보고에 따르면 자가용 차량의 10부제 상시 참여율은 15%고 가끔 참여하는 경우는 28%로 파악되고 있다.
10부제가 시행됐을 때 자가용 운행을 자제하겠다는 사람이 43%나 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차량운행을 절제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조사를 근거로 정부가 자발적인 10부제를 시행할 경우 적어도 실제 참여율 30%를 끌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하루 975㎘의 휘발유(1일 소비량의 2.8%)가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연료비 지출액으로 환산하면 하루 13억7000만원, 연간 약 5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자가용 차량 10부제 시행효과 분석’에 따르면 유가상승으로 국내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자가용 10부제를 시행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0.007%포인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미하긴 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내소비는 0.159%포인트 감소하지만 자가용 연료사용이 줄어들면서 국내유가 인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소비를 줄여 지출을 억제한 돈의 46%는 저축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저축이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투자세액 공제 등과 같은 적극적 정책지원을 하는 경우 국내투자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학습효과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석유 수급불안이나 유가인상 그리고 올림픽대회나 월드컵축구대회 등 국가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가용 10부제나 홀짝수제를 시행, 많은 직·간접 효과를 거뒀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때문에 큰 홍보비용 없이도 협조체제가 잘 이루어질 수 있는 부문이 바로 자가용 차량 10부제다. 이런 것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학습효과의 혜택이다.

단골메뉴라고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따른 비용과 정착하기까지의 준비 및 설득기간 등을 생각하면 자발적인 10부제는 당장 시행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의 학습효과를 갖고 있어 그 효과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작고 약한 대책이라도 그것이 정상적으로 지켜진다면 효과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앞으로 유가 수준이 더 높아진다면 단계별로 특단의 대책이 동원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새로운 대책은 또 다른 규제를 불러올 수 있고, 그것은 국민생활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름대로 반짝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시행과정에 나타나는 감시감독 등의 행정비용이나 규제로 인한 희생도 함께 걱정하면서 크고 강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의 고유가사태는 석유공급부족 때문이 아니라 선물시장의 투기수요와 미국 휘발유 시장의 수급불안 우려, 기타 지정학적 요인에 있는 만큼 지나친 정부개입보다는 에너지가격을 시장에 맡기는 시장원칙을 존중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체를 집중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항상 위기에 강한 진면목을 보여준 민족이다.

지금은 자발적인 자가용 차량 10부제부터 성공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이 우선돼야 할 시기다.
작고 약하다고 무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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