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는 사이 내 딸을 훔쳐갔어요”…한소희양 찾는 이자우씨

      2004.05.16 11:12   수정 : 2014.11.07 18:30기사원문

1989년 5월18일. 소희가 태어나고 첫 가족나들이가 약속된 바로 전날이었다.

놀이동산을 간다며 한껏 들뜬 두살배기 아들을 시부모께 맡기고 7개월 된 딸 소희만 등에 엎고 돗자리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다녀왔다.

오후 6시쯤 돌아와 보행기에 소희를 앉히고는 마당 한켠에 놓인 평상에 걸터 앉아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계세요? 여기가 진영엄마네 집인가요?”

현관문을 두드리기에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준 것이 화근이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땀을 닦으며 불쑥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마루에 턱 걸터앉아 ‘진영엄마’를 찾아 온동네를 뒤지고 다니느라 힘들다며 물 한컵을 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이웃들간에 왕래가 많았던 때라 매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이자우씨(사진)는 물 한컵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불청객은 이어 보행기에 앉아 놀고 있는 소희씨를 보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안아도 보고 뽀뽀도 해대며 자기도 요만한 딸이 있는데 참 이쁘다고 연신 너스레를 떨길래 무언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그만 가보라는 말을 차마 못했다고 한다.

남편이 올시간이 다가와 쌀을 씻으려 부엌으로 들어간 이씨. 문득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길래 뒤를 돌아보니 불청객과 소희 둘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바로 뛰어나가 찾아다녔으면 소희를 그렇게 잃어버리지 않았을텐데…. 너무 당황해서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고 나서야 집밖으로 뛰어나왔지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미아·실종자 사건’을 ‘살인·강도’사건에 비해 단순한 과실사고 정도로만 봤다고 한다. ‘부모들이 소홀해서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라며 죄인 취급까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가 잃어버린게 아니고, 제집 안으로 걸어들어와 아이를 안고 나간거 잖아요. 누군가 저걸 훔쳐야겠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덤비는 것을 어떻게 사전에 막을 수 있겠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고 마는 이씨는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죄책감과 분노가 치밀어 온몸이 떨려 온다고 한다.

“전라도 말씨를 �㎢彭� 같아요. 그리고 주위에서 ‘한서우유’가 그 지방에서 많이 먹었던 우유라고 알려주더라고요.”

당시 두살이었던 소희의 오빠는 고3이 되었고, 그 뒤에 낳은 막내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형제끼리는 닮잖아요. 소희가 막내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전단지에 막내 사진도 함께 넣어 돌린답니다.”

이씨는 죽을 때까지 소희를 찾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제보’가 가장 절실합니다. 귀찮더라도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미아 부모들에겐 큰 도움이 됩니다.


유괴아동을 찾는데는 무엇보다 ‘제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이씨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며 소희가 가장 좋아했던 곰 인형을 인터뷰 내내 손에서 떼지 못했다.

/ jinnie@fnnews.com 문영진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