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병화 국제금융센터 소장 “외국투자가,한국경제 장기적으로 낙관”
2004.08.16 11:45
수정 : 2014.11.07 15:16기사원문
지난 97∼98년 우리경제는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당시 우리정부는 “국제금융시장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귀를 대고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땅을 치고 후회했다. 지난 99년 4월1일 국제금융센터는 이처럼 뼈아쁜 교훈 속에 문을 열었다.
국제금융센터는 24시간 시장을 감시하고 다각적인 채널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위기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외환관리국 관계자들이 금융센터를 둘러보고 가는 등 세계 각국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진병화 국제금융센터 소장을 16일 서울 명동 국제금융센터 소장 집무실에서 만나 국제 금융계 현안과 센터운영의 구상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4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성과를 든다면.
▲취임 이후 미국 금리인상, 중국 긴축정책, 고유가 등 해외 3대 악재를 감시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데 주력했다. 주 임무인 조기경보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위험 징후가 보이는지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다. 또 해외 국제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분석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어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금융센터 설립 초기부터 관여를 해 오던 터라 익숙하다 여겼는데 막상 조직내에서 직접 챙기려고 하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업무 파악에 매달렸고 바쁘게 지냈다.
―국제금융센터의 주요 임무가 조기경보 시스템의 작동인 데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이 시스템은 위기발생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이를 정책 담당자들에게 알려 사전에 위기에 대한 대응조치를 강구케 한다.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여러 요인들과 관련된 지표들을 추출, 이중 몇개가 위험 수준에 있는지를 체크해 월 1회 정책당국에 보고한다. 특히 외국인들과의 개별 면담, 투자은행 등 외국기관들의 분석자료, 해외 언론 등 외국 시각을 상시 지켜보면서 외국인이 보는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에 만들어져 외환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작동되고 있다. 대내 유동성 위기가 외환위기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대내 유동성 위기 징후를 정량모형에 반영해 동시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데이터를 확실히 수집해 시스템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외국에서 현재의 우리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내와 달리 외국에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다만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점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일부 의견에 그치는 정도다. 외국에서는 수출이 잘 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나 중국이 경제성장을 견조하게 유지해오고 있지만 하반기에는 조정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국내 수출전선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수출 증가율이 둔화되는 정도지 수출 신장세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외국 투자가들 사이에선 장기적으로 국내 경제 및 기업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일본식 장기불황 위기론 역시 조금 과장된 측면이 없지않다.
―최근 미국이 예상과 달리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해 인상 기조를 확실히 내비쳤다.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두가지를 확실히 짚어보자. 먼저 미국의 금리 인상은 이미 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된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세계 및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올해 4% 이상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등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고성장이 이어지면 인플레가 생기고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경제성장은 제쳐두고 금리 인상만 바라보고 있다. 중국도 수출을 미국에 기대고 있고 우리 역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성장은 중요한 부문이다. 또 하나 미국 금리가 오르면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가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예고된 만큼 빠져나갈 자금은 이미 거의 빠져나간 상태다. 오히려 증시가 저평가돼 있어 자금 유입이 새롭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불 수 있다. 다만 우리경제 상황이 현 상태보다 좋아진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국내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 미국 금리 인상과는 관계없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13개월 만에 콜금리를 내렸다. 국내에선 물가 불안을 외면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많은 데 외국의 반응은.
▲외국인 투자가들이나 금융전문가들은 방향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외국에서는 그동안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여러차례 지적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콜금리 인하로 경기부양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금리 인하가 실제 경기를 살릴 수 있을지를 놓고 말들이 많은 데 효과 부분은 다른 문제다. 당장의 효과보다는 한은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을 잡았다는 데 외국 투자가들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유가가 불안해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 미국은 금리를 인상하는 추세지만 정책금리는 그 나라 사정에 맞춰서 하면 되는 만큼 미 금리기조에 방향을 맞출 필요는 없다.
―우리 시장이 동북아 금융 허브로 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동북아 금융 허브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과제가 있다면.
▲동북아 금융허브 건설은 참여정부 최대의 정책과제라 할 수 있다. 금융허브를 구상할 때부터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절실함에서 출발한 듯 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게 현실이다. 우선 금융허브에 걸맞은 역량을 키우는 일이 급하다. 특히 규제를 되도록 많이 풀어 금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 중요하다. 재정경제부가 추진 중인 금융통합법이 모델이 될 수 있다. 규제 부분이 국제화돼야 외국 금융사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다. 또 소프트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 ‘인프라’라 하면 ‘하드 인프라’만을 떠올리는 데 소프트웨어쪽도 중요한 부문이다. 이를테면 부정부패·법집행·지배구조 등에 관한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을 들 수 있다. 언어 문제도 큰 장벽이다. 홍콩에선 월 1000달러 정도면 영어가 유창한 직원을 구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어림도 없다. 그만큼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기 힘든 상황이다. 언어문제 해소가 금융허브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대담=이장규 금융부장
/정리= ucool@fnnews.com 유상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