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보다 더한’ 식민지 조국 현실 그려

      2005.04.20 13:01   수정 : 2014.11.07 19:07기사원문


‘슬픔보다 더한 진실이 있으랴, 고통보다 더한 현실이 있으랴.’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다 체포되어 적들의 감옥을 전전하던 청년 이보 안드리치(1892∼1975)에게는 외세에 강점당한 조국 보스니아의 슬픈 현실이 그 무엇 보다도 뼈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훗날 자신의 조국에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누리게 함으로써 청년시절 총칼로 이루려 했던 것 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고국에 안겨주게 되는 안드리치에게 창작작업은 현실세계의 폭압적인 외세에 항거하는 인간내면의 게릴라 전쟁이었으며, 그의 주옥 같은 소설들은 흐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고, 배타적인 민족들을 화해와 공생으로 이끄는 이정표가 되었다.

작금의 유고연방의 해체와 연이은 인종 갈등으로 다시금 세계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보스니아는 유럽 대륙의 가장 변방이며 이슬람 문화와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다. 안드리치가 출생할 무렵 보스니아 사회는 회교, 가톨릭, 그리스 정교, 유대교 등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상호이해와 관용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오랜 오스만 터키의 지배에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보스니아 민족 정신의 자각과 독립에의 열망은 사라예보에서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과 연이은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으며, 종전후 보스니아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과 함께 독립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제2차 대전 후 수립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모체가 된다. 직업 외교관 생활을 하던 안드리치는 독일의 베오그라드 공습과 침공으로 인해 가택연금 상태에 처해지는데 이 시기에 보스니아 삼부작으로 불리우는 ‘드리나 강(江)의 다리’, ‘트라브니크 연대기’, ‘아가씨’를 집필하게 된다.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는 장장 4세기에 걸쳐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를 관통하는 드리나 강 위에 놓여있던 다리를 둘러싼 운명의 대서사시다. 처음 1516년에 만들어져서 수많은 전란과 격변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간극을 이어주고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서로 다시 모이고 화합할 수 있게 해주던 이 다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폭발되어진다.


안드리치에게 다리란 대립되고 분열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금 이어주고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시대 초월적인 과묵하고 믿음직한 존재이며, 드리나 강의 다리는 오스만 터키의 압제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의 강점에도 꿋꿋하게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민족적 동질성을 잃지 않은 보스니아인들의 표상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이 다리를 둘러싼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마치 이 모든 것을 목도한 해박한 노인네의 회고담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슬픔보다 더한 진실, 고통 보다 더한 현실’을 극복 하고자 했던 애국 청년 안드리치의 열망은 시·공간의 모든 간극과 모순을 서로 이어주는 고결한 영혼의 매듭을 엮어 낸것이다.

/김영룡(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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