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재정고갈…납입기간 연장 개혁 박차

      2006.03.13 14:37   수정 : 2014.11.06 11:50기사원문


【파리(프랑스)=김문호·유상욱기자】‘아트 사커(Art Soccer).’

브라질에 ‘삼바 축구’가 있다면 ‘아트 사커’라 불리는 프랑스 축구는 유럽의 자존심이다. 축구 하나에도 ‘아트’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프랑스는 낭만과 예술이 숨쉬는 나라다. 에펠탑과 개선문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사크레쾨르 성당, 샹젤리제 거리 등 괴테의 말대로 거리의 모퉁이 하나를 돌고, 다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역사가 전개된다.

프랑스에는 거리마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샹송같이 달콤한 파리의 낭만만 있을까.

그러나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흔히 경험하게 된다는 파업과 시위현장, 극성을 부리는 소매치기의 모습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유럽의 사회보장제도가 옛말임을 실감케 한다.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회보장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실업대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흔들리는 연금재정

지난 2003년 여름, 유럽에 살인적인 폭염(暴炎)이 닥쳐 프랑스에서 보름동안 1435명이 사망했다. 그중 81%가 75세 이상 노인이었다.
대부분 노인들은 홀로 남겨져 젊은 세대들만 휴가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문화, 예술,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보장 선진국인 프랑스인의 콧대는 이 때 무참히 꺾였다. 그리고 연금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나섰다. 하지만 도도함이 남긴 허상은 의외로 두꺼웠다. 자존심이 만들어낸 실업난은 심각했다. 저출산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연금 재정의 근본부터 흔들어 댔다.

“개혁의 불꽃은 타올랐지만 가시밭길은 여전하다. 유럽의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연금재정 고갈이라는 현실이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의 부담이 되고 있다. 이제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느냐,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프랑스 중견기업 연금담당자는 고갈돼 가는 재정난을 걱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실업난 해소가 관건

파리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집 없이 떠도는 노숙자들(rough sleeper)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파리 시내에만 지하철역과 공원, 거리의 벤치, 빌딩의 후미진 곳 등에서 일정한 거처 없이 지내는 사람이 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의 실업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변해 준다.

프랑스 연금제도 역시 노동시장 참여율과 운명을 같이 한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지난 몇년 동안 9∼10%를 오르내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청년실업률은 20%를 넘나든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가 가장 고심하는 부문이 실업난 해소다. 지난해 7월 마련한 새 노동법은 심각한 실업난을 해소해줄 것으로 프랑스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만큼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프랑스 정부가 실업자들에게 지금까지 최저 임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생활보조비를 지급하면서 일을 하려는 사람보다는 편법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 고용정책 역시 취업동기 유발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한 채 덧난 상처를 안보이게 가리는 것이라는 비난이 많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한인 김모씨(55)가 실업과 연금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프랑스 현실을 귀띔했다.

노동단체와 학생들도 악법이라며 곳곳에서 철회를 주장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고용계약법안’이 26세 이하의 근로자를 고용할 때 입사 2년이 안 된 상태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7일에는 프랑스 오를리 공항의 관제사들이 기습파업을 벌여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중단되는 등 큰 혼란을 겪기도 했다.

■연금개혁에도 박차

프랑스의 연금체계는 3층 구조로 돼 있다.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연금 성격의 ‘기본연금제도’와 강제가입방식의 기업연금제도인 ‘보충퇴직연금제도’, 임의가입성격을 지닌 ‘추가보충제도’ 등이다.

이중 우리의 퇴직연금에 해당하는 ‘보충퇴직연금제도’는 소득의 7.5%를 보험료로 낸다. 사업장의 단체 교섭에 따라 사용자와 피사용자 간에 60∼40%를 분담한다. 연금수령은 60세부터 수령이 가능하다. 일반 근로자가 40년(160분기) 동안 근무할 경우 60∼77세까지 17년 동안 최종급여의 약 70∼90%를 받을 수 있다. 근로기간이 40년 미만인 경우 지급률은 낮아지지만 이 보다 많으면 일정 가산비율이 적용된다. 퇴직연금은 민간기관인 ‘ARRCO’와 ‘AGRIC’에서 관리 운영한다. 특히 ‘ARRCO’는 프랑스 총 사회보장지출액의 15.8%를 차지하는 강제보충연금기관(93개) 연합회의 성격을 가진 민영기관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은 사회보장을 뒷받침하는 재정을 악화시켰다.

지난 2003년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대대적인 연금 수술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오는 2008년까지 공무원의 연금납입기간을 40년으로 늘리고 2020년부터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납입기간을 42년으로 단계적으로 연장키로 했다. 아울러 공무원연금 수급자의 급여액도 임금에서 물가에 연동되도록 했다. 이외에도 ‘퇴직보장위원회’를 설치해 가입자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개인의 의사에 따라 65세까지 더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고 있다.


프랑스의 이 같은 연금 개혁안은 노동자의 반발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민간부문에 대한 제도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다. 프랑스는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개별 노사협정을 통해 확정기여형 연금(DC)방식의 사적 연금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한국의 퇴직연금이 프랑스의 전철을 되밟지 않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대목인 듯싶다.

/ km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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