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B네트워크 김한섭 사장…원칙따른 투자…벤처캐피털 1세대 위상 지켜

      2006.07.02 15:15   수정 : 2014.11.06 03:39기사원문


2006년 3월24일 오전 KTB네트워크 주주총회. 이날 ‘특별한’ 임원 선임건이 통과됐다. 25년 전 평사원으로 입사한 김한섭 부사장이 이날 최고경영자(CEO)자리에 올랐다.

“사장 됐다고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월급도 같고 하는 일도 차이가 없지요. 한가지 달라진 것은 회사 차가 오피러스에서 에쿠스로 달라졌네요(웃음).”

이렇게 담담하게 말문을 열긴 했지만 김사장(54)은 지난 25년 세월 동안 가장 뼈아픈 기억을 취임 소감으로 털어놨다. 세번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일이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처럼 늘 걸렸던 것.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자리에 오른 도요타의 오쿠다 전 회장이 이런 말을 했죠. ‘직원 목을 자르는 경영자는 자기 배부터 그어라’고…. 우리가 겪은 그때의 구조조정은 참 힘들었고 ‘부끄러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 값비싼 교훈으로 지금은 안정을 찾은거죠.”

KTB네트워크는 지난 81년 과학기술부 산하 신기술사업금융회사(한국종합기술금융)로 설립됐다. 지난 85년 벤처 1호인 메디슨, 카스 등에 투자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지난 98년 대규모 금융사고가 터졌다. 1800억원대 대출 사기 사건에 휘말린 것. 첫번째 위기였다. 당시 자기자본 2000억원도 채 안되는 상태에서 한마디로 회사가 통째로 거덜날 뻔한 대형 사고였던 것. 이 사실은 정주영 회장이 소떼 몰고 방북하던 날 언론에 알려졌다.
빅뉴스에 가려 조용하게 넘어간 것이다.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하고 99년 DJ정부가 들어서면서 KTB네트워크도 공기업 민영화에 포함됐다.

그러고는 벤처붐이 몰아쳤다. 대규모 흑자가 났다. 직원 수도 260명(2001년초)으로 늘었다. ‘몸집’이 갑자기 커져버린 것이다.

“99, 2000년 벤처붐 때는 한해에 6000억원씩 벌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탈이난 거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그렇게 큰 돈을 지금까지 벌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벤처에 또 쏟아부은 것이화근이었죠. 재무관리 측면에선 정말 무능한 일이었어요.”

벤처 버블이 한순간에 내려앉으면서 KTB네트워크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

“그때 받은 외부 컨설팅 결과 ‘수술’이 시급하다는 것이었요. 우선 사람부터 줄였어요. 100명 정도가 회사를 떠났죠. 그 이후 또 직원을 90명까지 줄였어요. 회사 마스터플랜도 새로 짰어요. 펀드를 결성해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투자하는 ‘펀드운용회사’로 가겠다고 전략을 수정한 겁니다.”

김사장은 2004년 당시 부실자산 1100억원(자산기준) 감액 손실로 털어냈다. 또 벤처투자에 전문가 제도를 정착, 전문 분야를 가진 심사역들을 키웠다. 현재 KTB네트워크의 투자 전문인력(심사역)은 41명. 국내 업계에선 가장많다.

지독한 홍역을 앓은 것처럼 그렇게 구조조정은 끝났다.

그 결실인가. 다음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때마침 코스닥시장 활황에 힘입어 207억원의 당기순익을 냈다. 회사의 수익구조를 ‘순조롭게’ 다변화하는데 주력한 결과다. 이는 펀드운용 전문회사로 변모하면서 관리보수, 성공보수료 등 일정한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체질이 단단해진 것.

KTB네크워크는 지난해 4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했고 올해도 5000억원이 목표다.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08년께는 운용자산이 2조원을 넘는다.

KTB네트워크는 벤처투자, 바이아웃, 기업구조조정(CRC)이 큰 사업 축이다. 특히 지난해 결성한 총 2700억원 규모의 사모투자펀드(PEF) 1호, 2호가 오늘의 KTB네트워크의 모습을 대변한다. 과거 벤처투자만 하던 벤처캐피털이 더이상 아니다는 말이다. 2700억원 PEF는 연내에 60∼70%가 집행된다.

KTB네트워크는 해외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중국기업 투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투자한 중국 벤처기업 2개사에서 최대 900%의 ‘대박’을 1년여만에 터트렸기 때문. 중국 파트너를 잘 잡은 결과이기도 하다. KTB네트워크는 조만간 1억달러 규모의 중국투자펀드(2호)를 만든다. 이밖에 중국 부실채권 투자도 진행중이며 향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까지 투자 무대를 넓힐 계획이다.

김사장은 소탈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아주 꼼꼼하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어찌보면 벤처투자 특성상 철저하게 따지고 분석하는게 당연한 일. ‘KTB맨’으로 25년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한눈에 꿰뚫고 있다.

“남들이 나보고 ‘완전히 칼’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25년 오랜시간 풍상을 겪고서는 그 ‘칼’이 더 예리해지더군요. 우선 이 업계에선 원칙을 벗어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유혹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잘 나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도 벤처 버블 때였어요. 그때만 해도 돈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자기 돈으로 싸게 주식받고 투자하는 그런 유혹이 많았지요. 그러고선 회사가 어려워지면 먼저 빠져나오는 그런 ‘모럴 해저드’가 심각했죠. ”

김사장의 원칙에 철저한 ‘정도(正道) 투자’가 바로 벤처캐피털 업계 1세대로 존경받는 이유다.

/ skjung@fnnews.com 정상균기자

◇약력 △54세 △구미 △서울대 기계공학과 △산업은행 기술부 △현대중공업 플랜트, 산업기계부 △KTB네트워크 △KTB네트워크 상무 △KTB네크워크 전무 △대표이사 부사장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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