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아파트 시세표 ‘엉터리’

      2006.11.07 20:35   수정 : 2014.11.04 19:41기사원문

주부 강미옥씨(가명·36)는 이틀 전 집을 구하러 갔다가 낭패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강씨의 사정은 이렇다. 직장이 서울 강남지역으로 바뀌자 강씨는 서울 도봉구 창동의 집(32평형 2억8500만원)을 팔고 강남과 가까운 동대문구 전농동, 장안동 일대로 집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미리 국민은행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이 지역 시세도 조사했다. 약간의 돈만 더 보태면 비슷한 평형대로 이사가 가능했다.
전농 SK 33평형(평균 3억원·11월2일 기준), 장안 현대 32평형(3억7000만원), 장안 삼성2차 30평형(3억7000만원)등 이 지역 대표 아파트의 가격은 3억∼3억700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농동 중개업소를 들어선 순간 강씨는 깜짝 놀랐다. 이들 아파트가 국민은행 시세보다 적게는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 강씨가 국민은행 시세표를 내밀었지만 냉소와 함께 “4억원 이하로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만 돌아왔다.

국민은행이 매주 금요일에 발표하는 전국 아파트 시세표가 일부 지역의 경우 최대 2억원까지 적게 표기돼 일반 소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국민은행은 각 지역 아파트 단지별로 중개업소 두 곳으로부터 가격 동향을 파악해 매주 금요일에 인터넷에 게재한다. 정부가 매달 부동산가격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시세표를 기준으로 주택 투기지역 지정 여부를 심사할 만큼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만큼 시장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시세표가 실제 거래가와 너무 차이가 나 정부의 주택정책 왜곡이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시세를 게재하는 중개업소가 해당지역의 투기지역 지정을 피하기 위해 집값 오름폭을 의도적으로 낮춰 올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세제공을 하는 두 업소가 말을 맞추면 시세 왜곡이 가능한 상태다.

■실거래가와 최대 2억까지 차이

서울 노원구 중계동 롯데우성 42평형(국민은행 시세 평균 6억3000만원·11월3일 기준)의 경우 국민은행 시세보다 최대 1억7000만원이나 비싼 8억원까지 거래가 되고 있다. 같은 단지의 37평형이 6억원에서 6억5000만원에 거래가 되고 있는 상태다.<표참조>

동대문구 전농 SK 33평형의 경우 국민은행 시세에는 2억7500만원(10월27일 기준)으로 나와 있지만 시장에선 3억5000만원 이하로는 엄두도 못낸다. 그나마 호가가 오름세에 있어 최근엔 매물까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성북구 길음뉴타운의 대우푸르지오 33평(국민은행 시세 평균 4억2000만원·11월3일 기준)도 4억7000만원 이상으로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강남지역보다는 강북, 그리고 비투기지역일수록 심각했다.

닥터아파트, 부동산114 등 컨설팅 업체들의 발표 가격도 실거래가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국민은행의 발표 가격은 차이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동대문구 전농동의 D공인 노모사장은 “이곳의 경우 아파트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지만 11월 국민은행이 집계해 발표한 시세는 한달 전 가격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 주택투기지역 지정 기준 왜곡 우려

정부는 지난 3일 주택투기지역 후보지로 서울 노원·도봉·동대문·서대문·중랑구 등 14개 시·군·구를 명단에 올렸다. 이들 지역은 집값 상승폭이 8월 물가상승률(0.2%) 대비 1.3배에 해당한다고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위원장 재경부 차관)는 밝혔다. 그러나 노원, 도봉, 동대문 등은 한달새 크게는 30%대의 가격 상승률을 보이고 있음에도 국민은행 시세표에는 1%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정부의 주택투기지역 지정은 월별 집값 상승률이 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30% 이상 높은 지역 중 2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전국 평균보다 30% 이상 높거나 1년간 연평균 상승률이 3년간의 전국 연평균 상승률보다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건교부 장관이 지정, 요청한다. 이후 재경부 장관이 부동산자격 안정심의위원회를 거쳐 지정 및 해제(필요시 재경부장관이 직접 위원회 회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통계를 제공하는 국민은행 시세표가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함에 따라 정부의 주택정책까지 왜곡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개업소가 의도적으로 낮춰 신고”

일각에선 중개업소들의 의도적인 담합 혐의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지역이 투기지역으로 묶이게 되면 영업이 위축될 것을 염려해 중개업소측에서 급등한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면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양도세를 내야 하는 등 거래 요건이 많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모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격을 상당 폭 낮춰 등록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가격을 정확하게 등록해 득 될게 뭐 있다고 그렇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부동산정보업계 한 전문가는 “국민은행 시세가 시장가격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큰 폭인 줄은 몰랐다”며 “국민은행 시세표가 잘못되면 주택투기지역 지정정책의 신뢰도와 공정성이 떨어지게 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시세표는 매주 금요일에 갱신되고 아파트단지마다 2개 업소를 선정해 가격 집계를 하고 있다”며 “차이가 나는 지역은 체크해서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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