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본 블루오션 공연 ‘러브’

      2006.11.09 17:59   수정 : 2014.11.04 19:36기사원문


‘어린왕자’가 사는 동화 속 별에서 서커스 공연이 펼쳐진다면 어떤 무대가 될까.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무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공연을 현실 속 무대로 올린다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과연 가능은 할까.

영화에서야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한 연출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현실 무대에 이런 상상 속 공연을 꾸민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상상 속 서커스를 무대에 올린 공연이 있다. 베스트셀러 ‘블루오션’의 첫 사례로 등장하는 세계 최대 예술기업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 중인 ‘러브(Love)’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84년 설립된 태양의서커스는 퇴출 위기의 서커스에 예술성을 접목시켜 지난해만 7500억원의 수익을 올린 최고의 예술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은 세번째 작품인 ‘퀴담(Quidam)’을 들고 내년 3월29일부터 6월3일까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잔디광장에서 모두 78차례 공연을 펼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이 최신작으로 선보인 ‘러브’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봤다.
일단 ‘러브’의 라스베이거스 공연장은 어린왕자가 나오는 우주 공간의 작은 별과 같다. 우주 속 같은 어두컴컴한 공연장에는 상상 속의 주인공들이 검푸른 공간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빛나는 무대는 갈라져 가라앉거나 솟아오르면서 배우들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새하얀 천사 같은 옷을 입은 여인은 시커먼 우주 공간 같은 무대 위로 솟아오르다 사라진다. 또 걸어 다니는 꼬마우산, 아코디언 사람, 수많은 발이 달린 피에로 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나 나올 듯한 주인공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꿈 속의 서커스’에선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나오다가 갑자기 산산조각 나눠져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기도 한다.

배우들은 꼭두각시 인형 같지만 화려한 춤 동작이 일품이다. 이들은 공연을 하기 보단 마치 무대를 자신들의 놀이터처럼 뛰어 다니고, 텀블링하면서 즐거워한다. 배우들이 무대에 발을 잠시라도 가만히 붙이고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러브’는 뮤지컬 ‘맘마미아’와 유사한 점도 있다. ‘맘마미아’가 지난 70∼80년대 전세계를 휩쓴 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뮤지컬 넘버로 활용했다면, ‘러브’는 지난 60년대 젊은이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룹 ‘비틀스’의 명곡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맘마미아’와 다른 점은 대사 없이 비틀스의 노래와 서커스만으로 공연의 주제인 ‘평화와 사랑’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공연중에 들리는 비틀스의 노래들은 서커스의 흥을 더욱 부추긴다. 비틀스의 히트곡 ‘옥토퍼스 가든(Octopus’s Garden)’이 흐를 때는 새하얀 해파리 모양의 물체들이 무대 위를 점령하고 이리저리 흐느적거린다. 마치 심해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태양이 떠오르네(Here comes the Sun)’가 들릴 때면 인공 태양과 가부좌를 튼 인도의 요가승들이 공중으로 서서히 부상한다. ‘레볼루션(Revolution)’이 불려질 땐 데모를 진압하는 경찰들과 빨간 공중 전화박스를 두고서 공중제비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대의 안에 그대의 밖에(Within you without you)’가 흐를 땐 무대 가운데서 쏟아져 나오는 새하얀 천들이 체육관 크기의 객석을 완전히 뒤덮는다. 마치 한·일 월드컵 응원 때 대형 태극기가 관중석으로 올라가는 것과 유사하다.
피날레에선 비틀스의 대표곡인 ‘헤이 쥬드(Hey Jude)’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장밋빛 종이 꽃가루가 함박 눈 내리듯 객석으로 수없이 쏟아진다. ‘러브’는 평화와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종간 화합, 동서양의 만남, 비폭력 등 무거운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공연이 어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 심오한 아우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너무나 신비로운 장면들로 인해 이런 무거운 주제들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사진설명=비틀스의 ‘헤이 주드’가 흐르는 가운데 장밋빛 종이 꽃가루가 함박눈처럼 내리는 ‘러브’의 피날레 장면은 말 그대로 압권이다. /사진=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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