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 스트레스에 ‘性기능 장애’
2006.12.14 16:16
수정 : 2014.11.04 15:07기사원문
“정신과라니요? 제가 어디 미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아니, 그깟 인사 스트레스야 매년 있는 것인데, 어디 남자가 그것 하나 못 이기면, 이 힘든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람을 뭐로 보고….”
모기업 중견간부인 A과장이 처음 찾은 곳은 비뇨기과였지요. 50대인 A과장의 불행은 딱 하루 밤만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남들은 크리스마스며 연말연시로 들뜬 요즘, 인사이동 소문으로 뒤숭숭한 A과장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가뜩이나 동기들이 다 퇴직하고 난 마당에, 지난달 영업실적이 좋지 않아 곧 회사를 떠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으로 하루 하루를 살얼음 같은 불안 속에 보내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의 잠자리 중에 갑자기 인사 담당자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도저히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졸지에 ‘발기 부전’이라는 성기능 장애가 생긴 것이지요. 아내도 깜짝 놀랐지만, 짐짓 ‘신경 쓰지마, 스트레스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A과장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 들어 갔습니다. 정말이지 용기를 내어 비뇨기과를 찾았지요. 그러나 담당 선생님이 A과장의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정신과를 가보라는 말에 몹시 기분이 상했나 봅니다.
발기부전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성적인 흥분이 시작되면 우리 몸은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로 곧 싸울 기세로 신체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호흡과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근육은 긴장을 하고, 온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렇지만, 신체기관 중 딱 한 곳은 부교감 신경계가 우세해야 발기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성기’입니다. 교감신경계는 피를 빨리 순환시켜 심장으로 보내기 때문에, 차분히 혈액을 성기에 꽉 채워 넣고 빠지지 않게 하는 부교감신경이 우세해야 발기가 유지될 수 있지요. 물론 흥분이 너무 강해지면 부교감 신경계가 지배했던 ‘그 곳’을 교감신경계가 덮쳐오면서 극치감과 함께 사정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만약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조화가 깨져서 발기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실에서 A과장이 처음 보인 반응은 ‘부정(否定)’과 ‘오해(誤解)’였습니다. 이미 스트레스 때문인지 알면서도 ‘스트레스, 그거 별 것 아니야’라는 마음 가짐이 ‘부정’이며, ‘정신과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만 가는 곳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해’이지요.
A과장에게 당장 시급한 처방은 당연히 ‘이완’입니다. 이완을 하는 방법은 잡념을 버리고 온 신경을 그 순간, 그 일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지요. 약간의 음주와 따뜻한 목욕도 몸과 마음의 이완에 도움이 됩니다. 호흡, 특히 내쉬는 숨을 길게 가져가는 보십시오. 날숨은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합니다. 그래도 별 변화가 없다면, 항불안제와 같은 약물 요법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발기부전은 대부분 일시적입니다. 오히려 괜한 걱정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듭니다. 또한 스트레스 치료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인식 변화의 하나입니다. 스트레스는 못나거나 약한 사람만 겪는 것이 아니거든요.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drmes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