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스트레스 풀어야 암 예방

      2007.02.01 16:54   수정 : 2014.11.13 17:15기사원문


“그래서 제가 확 받아버렸지 뭡니까? 가끔 한 번씩 그렇게 해주어야, 저도 스트레스 좀 풀고, 시어머니도 조심하지요.”

사십 대 중반 광고회사 기획과장인 A가 몇 달 전 병원을 찾았을 때 심한 우울증이었답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에, 함께 오신 시어머니께서는 이렇게 착한 며느리가 없다며 눈물을 떨구셨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말대꾸 한 번 못하는, 그 착한 아내이자 며느리가 왜 우울증이란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을까요? 육체적인 고통은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삼십 대 말에 이미 유방암이 그녀를 덮쳤지만, 그 불행을 너끈히 이겨낸 그녀니까요. 그녀의 성격이 문제였지요. 스트레스를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너무나 온순하고 억압적인 성격이 문제였답니다. 회사에서도 상사건 부하건, 비합리적인 지시나 잘못된 행동에도 묵묵히 참기만 하는 그녀였습니다.

자꾸 스트레스를 참기만 하면 병이 생깁니다. 화병이나 우울증이 대표적이지요. 정신적 질환뿐이 아닙니다. 신체적 질환도 많이 발생합니다.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암’도 참는 사람에게 많이 생길 수 있는 병입니다. 정확히 말씀 드리자면, ‘참는다’는 것 보다는 ‘억압한다(repression)’ 또는 ‘부정한다(denial)’는 표현이 더 맞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 갈등이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쓰는 정신의 활동을 ‘정신방어기제(mental defense mechanism)’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억압’이나 ‘부정’이라는 정신방어기제를 많이 쓰는 성격이 있습니다. 마음의 갈등이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꾸 억압하고 부정하는 성격이지요. 최근에는 학자들 사이에서 C형 성격(type C personality)이라 불립니다. 또는 ‘암(cancer)’ 성격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A형 성격과 B형 성격도 있냐고요? 물론이지요. 혈액형과는 아무 상관없으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A형 성격은 '화를 잘 내고, 경쟁적이고, 급하고,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혈관 질환에 잘 걸린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B형 성격인 사람은 화를 심하게 내는 일이 없으면서도, 마음 속의 갈등과 감정을 잘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B형 성격입니다.

그러면 C형 성격은 어떨까요? C형 성격의 사람들은 너무도 협조적이고 인내심이 많지만, 주장이 부족하여 수동적입니다. 외부에서 보면 B형 성격과 유사해 보입니다. 둘 모두 태평하고 밝지요. 그러나 B형 성격은 분노, 공포, 슬픔 등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는 반면에, C형 성격은 겉으로는 강하고 행복한 척하느라고 애쓰지만, 부정적 감정, 특히 화와 분노를 억제하거나 억압합니다.

많은 의학연구 결과를 보면, C형 성격은 암에 걸린 사람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답니다. 예를 들자면, 유방암, 피부흑색종, 전립선 암, 백혈병, 임파선암, 그리고 폐암에 걸린 사람들 중에 C형 성격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단순히 성격이 어떻다고 해서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 감염, 식습관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 입니다. 또 때로는 참는 것이 미덕이고,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고,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이야기들! 물론입니다, 다 맞는 이야기 입니다. 다만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지요.

싫은 소리 한 번도 못하고 사는 그런 A과장에게, ‘스트레스를 표현해보라’고 처방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시끌벅적 했었지요. 병 고치러 병원 갔다가, 의사 잘못 만나서 사람 버렸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삼십 년 만에 처음 해본 감정의 표현이라 좌충우돌 실수 연발이더니, 곧 자리를 잡더군요. 감정이 많이 섞이면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감정이 너무 안 섞이면 효과가 없다는 것도 알았답니다. 회사에서도 적당히 화도 내고 달래주고 해야, 상사에게 사랑 받고 부하들이 존경한다는 것도 알았답니다.
적당함을 배운 것이지요. 적당한 스트레스 표현, 암 예방의 필수 조건입니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drmes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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