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스트레스 증후군, 피하지 말고 즐겨라

      2007.02.15 16:46   수정 : 2014.11.13 16:27기사원문

정신과 의사는 명절이 싫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 스트레스이겠지요.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토착(?)질병을 치료하느라고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입니다. 일단 명절이 지나면 한동안 상담실은 온통 ‘미운 사람 성토장’이 된답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며느리 질병에서 시어머니에게 전염되더니 최근에는 남성들도 명절의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경쟁적 압력에 우울증을 앓게 되는 가장도 많이 늘었습니다. 물론 가장 비극적인 것은 지난 수년 간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서인지 명절을 앞두고 가장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회 현상마저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 창궐하고 있으니 더 기가 찰 노릇입니다.

시집 못간 노처녀는 친척들이 돌아가며 하는 ‘시집은?’ 한마디에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가 생기는 ‘노처녀 가슴 앓이병’, 양반다리자세로 밤 새워가며 화투를 치고 또 십 수시간 운전으로 엉치와 허리에 통증이 생기는 ‘명절 관절염’, 자식들 멀리 보낸 기러기 아빠에게는 떡국 떡 하나 떠 넣을 때마다 목구멍에서 외로움이 꺼이 꺼이 올라오는 ‘조류(鳥類) 우울증’.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이 참 아프네요.

명절은 스트레스의 비상시국입니다.
적지 않게 드는 제수 용품 비용이나 선물과 용돈 등 경제적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지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갈등이지요.

오래 전에 시어머니 위엄이 지켜질 시절에는 일방통행 며느리 고생이었지만 세월이 바뀌다 보니 이제는 시어머니 또한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게 되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뿐만 아닙니다. 아들도, 시누와 올케 모두 다 피해자라고 합니다.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니 당연히 미움만 쌓여갑니다.

며느리만 일을 시키는 시어머니보다 손 놓고 놀고 있는 시누 때문에 명절이 싫답니다.

당신 고생한 시절에 비하면 오히려 모시고 사는 형국인데도 얼굴 한번 밝게 펴지 않는 며느리보다 옆에서 꿀 먹은 벙어리모양 한마디 않고 눈만 끔뻑 대고 있는 아들놈 때문에 명절이 싫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 만큼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미움의 감정은 심신을 병들게 합니다.

이렇게 피하고 싶은 명절은 해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 나타나니 만성 스트레스가 됩니다. 급성 스트레스와 달리 만성 스트레스는 다가올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게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상황으로 무기력하게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어 일상의 고통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지요. 명절이 다가오면 ‘틀림없이 올해도 괴로울 거야’라는 걱정과 근심 때문에 불안해지며 잠을 못 자고,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불안증’을 앓게 됩니다.

명절 동안의 갈등과 스트레스는 차라리 정신없이 지나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분노와 설움으로 쏟아지는 울음은 멈추질 않습니다.

‘다시는 안 당하리라’ 수없이 되새겨보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나, 명절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옵니다. 만성적인 고통으로 인해 자칫 ‘화병’이나 ‘우울증’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일은 축하하고 나쁜 일은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명절을 만드는 방법은 ‘회피’보다는 ‘도전’에 있습니다. ‘이번만 무사히 넘기면…’이라는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또 다시 명절을 스트레스로 떠넘길 뿐입니다.


스트레스 해소 원칙 첫 번째를 잊지 않으셨지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습니다. 까짓 꼭 치러야 한다면 멋지게 한 번 놀아 보지요. 도와주지 않는 시누나 남편에게도 도와 달라고 큰 소리 한번 쳐봅시다.
타박만 하시는 시어머니에게 솜씨 한번 보여달라고 떼도 쓰고 나도 한잔 하겠다고 시아버지에게 어리광도 부려 보세요.

기왕이면 이번 기회에 화투도 배우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개평 좀 달라 졸라보자고요. 이제 피해자가 아닌 놀이꾼으로 올 명절부터는 신나게 놀아봅시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drmes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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