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비닐봉투 인심도 끝

      2007.05.06 11:25   수정 : 2014.11.06 01:36기사원문
【싱가포르=한민정기자】지난 2일은 싱가포르의 BYOB(Bring Your Own Bag) 즉, 장바구니 가져오기를 실시하는 날이었다. 퇴근길에 들렀던 수퍼에서 사과와 홍차 티백을 사고 계산을 하려니 점원이 오늘은 BYOB 날이라서 비닐봉투가 필요하면 10센트를 내야하는데 그렇게 하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평소 서류와 신문을 넣고 다니느라 늘 큰 가방을 지니고 다니는 터라 가볍게 가방에 넣고 돌아보니 옆줄에 외국인도 서류 가방에 꾸역 꾸역 장을 본 물건들을 집어 넣고 있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장을 보면서 놀랐던 점 중의 하나가 펑펑 아낌없이 주는 비닐봉투였다. 한국은 이미 비닐봉투를 돈받고 팔기 시작한지 오래되었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주부들도 많았는데 싱가포르에서는 비닐봉투 하나만큼은 인심이 후했다.
식당에서도 물을 돈받고 팔고 물티슈도 절대 공짜로 주지 않는 인색한 나라가 비닐봉투는 아낌없이 주는 편이었다. 조금 무겁다 싶은 음료수나 과일 등을 사게 되면 어김없이 비닐봉투 2장을 겹쳐서 물건을 담아주고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을 각기 분리해서 다른 봉투에 담아주는 통에 물건은 5∼6가지 샀는데 양손에는 비닐봉투가 4개나 들려지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오죽하면 신문의 기고란에 한 외국인이 싱가포르는 비닐봉투를 많이 주는 것으로 서비스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을까.

나도 처음에는 공짜 비닐봉투가 너무 편해서 주는대로 마구 받아들고 왔는데 며칠후부터 이 산더미같은 비닐봉투들이 처치곤란 상황에 놓여졌다. 아직 분리수거가 본격화되지 않은 싱가포르에서는 쓰레기도 비닐봉투에 되는대로 담아서 버리기만 하면 되니까 쓰레기 봉투용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싱크대 서랍 한칸에 봉투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한달도 되지 않아 이내 서랍이 꽉차 버린것이다. 아무리 쓰레기 봉투로 사용한다고 해도 혼자 사는 살림에 쓰레기가 많이 나올 턱이 없는 것이다. 결국 꽉 차지도 않은 쓰레기통을 대충 비우고 다시 비닐봉투를 사용하거나 두개씩 겹쳐서 쓰레기 봉투로 사용하는 등 비닐봉투를 마구 내버리는 식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러던차에 생활용품전문점인 이케아가 처음으로 비닐봉투 무료 배포를 중단하고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실시하고 매달 첫번째 수요일이 장바구니 들기의 날로 지정되면서 산더미같은 비닐봉투에서 해방될 조짐이 보인다.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예전같으면 2∼3개의 봉투에 나눠담아줬을 법한 분량의 물품도 최대한 봉투 1개에 담아서 해결한다. 물론 아직은 캠페인의 초기 단계라 매월 첫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봉투도 유료가 아니고 고객이 원하는 만큼 무료로 나눠준다. 비닐봉투 유상판매에 대한 소비자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부 슈퍼의 경우 BYOB 날에는 매상이 줄어든다고 한다. 비닐봉투의 유료화를 선언한 이케아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도 제법 있었다. 싱가포르는 비닐봉투의 판매금액이 환경기금에 기부하도록 되어 애초에 소비자가 비닐봉투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10센트를 기부하고 비닐봉투를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경우 유료 판매 비닐봉투를 가져오면 돈을 되돌려주거나 남은 수익금은 기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잘 관리가 안되는 것 같다.누가 먼저 시작을 했던, 어떤 방법으로 하던 결국 후손에게 좀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자는 것이 목적 아닐까. 처음의 취지가 바래지 않도록 모두 노력해야하는 문제다.
우선 내일부터 비닐봉투는 거절하고 가방에 담아와야겠다.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mchan@fnnews.com한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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