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제작자 윤호진 에이콤 대표

      2008.01.03 16:13   수정 : 2014.11.07 16:18기사원문


이번주부터 뮤지컬 제작자 10인의 이야기를 담은 ‘프로듀서스’를 연재합니다. 화려한 무대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제작자들의 작품 철학과 솔직한 포부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첫번째 순서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사 에이콤 인터내셔널의 윤호진 대표입니다. <편집자주>
혼령이 된 명성황후의 자태는 처연하면서도 강인했다. 마지막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가 울려퍼지자 관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2007년 마지막 서울 공연의 풍경이다.

이 날 ‘명성황후’ 제작사인 에이콤 인터내셔널의 윤호진 대표는 후드 점퍼 차림으로 공연장 로비를 서성였다.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날까지 변함없이 쏟아진 찬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지금 ‘명성황후’를 압도할 작품을 구상 중이다.

“2009년은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입니다. 거기에 맞춰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대형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있어요. 이제 막 첫 원고가 나왔지요.”

그가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든 1995년도도 명성황후 시해 100년째 되던 해다. 그는 ‘사람들이 나더러 100주기 제작자라고 한다’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그가 안중근 의사를 떠올린 데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열다섯가지 이유 중 첫번째가 명성황후 시해더군요. 아! 이거다 싶었죠. ‘명성황후’와의 연결고리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사료가 부족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생을 참 건조하게 산 위인’이란다. 결국 안중근을 사랑했던 두 명의 여인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그 중 한 명은 을미사변 때 살아남은 궁녀로 복수를 위해 기꺼이 자객이 된다는 설정이다.

각색 못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바로 하얼빈 역의 총격 재현. 그는 뮤지컬 ‘미스사이공’의 헬리콥터 장면을 누를 정도로 화려하고 압도적인 무대 장치를 만들겠단 각오를 내비친다.

“요즘 관객들 눈이 어디 보통 눈인가요. 진짜 기차가 눈앞에서 달려오는 것처럼 입이 딱 벌어지게 할 겁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제국주의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수 있게 말이죠.”

그는 유독 작품 속에 역사와 애국심을 담기를 고집한다. 가볍고 코믹한 작품이 대세라 해도 그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 나라만큼 영웅이 없는 곳이 없어요. 이런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에요.”

그의 힘은 바로 이런 자존심에서 나온다. 열혈 좌파 성향의 공대생이던 그가 연극에 빠져 유학을 갔을 때나 1991년에 제작사 에이콤 인터내셔널을 만들 때나 1995년에 ‘명성황후’를 선보일 때 모두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이 있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공부하다 보니까 위기감이 몰려오더라구요. 다들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드는데 우린 베끼고 수입하는 데에만 급급하니 참 답답했지요. 이러단 문화 속국이 되겠다 싶어서 저라도 해야겠단 심정으로 뛰어든 거에요.”

당시로선 천문학적이었던 12억의 비용을 들여 명성황후를 만들어냈다. 그의 다음 행보는 브로드웨이. 지금 생각하면 무척 겁없는 행동이지만 ‘무대뽀’ 정신은 먹혀들었다. 뉴욕타임스가 극찬을 하자 세계는 ‘명성황후’를 다시 봤다.


그에게 ‘명성황후’는 이제 든든한 수입원이다. 한때 실험주의 연극에도 몰두했지만 ‘여기저기 구걸하다시피 작품을 하는게 너무 싫어서’ 뮤지컬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나니 새로운 길이 보이더군요. 효자상품 ‘명성황후’는 또 다른 대작을 위한 거름이 되어주는 거죠. 대작은 또 다른 대작을 낳고…. 이런 식으로 우린 계속 발전해가는 겁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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