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 93명 병역비리..프로선수 수두룩

      2008.02.03 11:58   수정 : 2014.11.07 13:36기사원문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병역비리가 지난해에 이어 정초부터 또 터졌다. 이번에는 K리그 등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들이다. 신체훼손 병역비리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무려 92명의 선수가 어깨를 일부러 탈구시켰다.

또 다른 1명은 잠을 자지 않고 커피를 마신 후 몸의 특정 부위에 힘을 줘 본태성(원인미상) 고혈압을 유발하는 신종수법으로 병역의무를 회피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축구계에서 공공연하게 떠돌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2년 동안 운동을 중단할 경우 근육이 풀린다는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검찰은 오히려 신체를 손상하는 것은 향후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소년축구 코치부터 K리그까지

수사기관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축구선수는 국내 프로구단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15명이었고 이 가운데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선수도 있었다. 또 K-2리그(실업) 출신이 35명, K-3리그는 15명이었다. 나머지는 대학 소속이거나 유소년축구클럽코치, 축구를 그만둔 이들이다. 고혈압을 유도해 병역특혜를 받은 선수도 프로구단에서 뛰고 있다. 병역비리가 축구계에 만연해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선후배가 어깨를 밟고, 아령 들어 밑으로 내려치고

축구선수들이 병역에서 특혜를 받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검찰에 따르면 적발된 대부분의 선수들은 2∼3개월 동안 10kg의 아령을 들고 어깨에 통증을 느낄 때까지 아래로 세게 내려치고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는 방법으로 어깨를 뺐다. 이렇게 탈구되면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약간의 통증이 오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어 선호하는 수법이다.

군 입대가 임박하면 어깨뼈 탈구와 함께 근육 찢어질 경우 매우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음에도 동료, 선.후배에게 어깨를 밟아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선수들은 어깨를 탈구시켜 4급(공익근무) 판정을 받은 후 다시 5급(면제)을 받기 위해 다시 어깨를 빼고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는 어깨 수술 후 다시 탈구되거나 재수술이 필요하면 5급 판정하도록 규정된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악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한 11명 중 실제 면제받은 선수는 3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8명은 다른 부위가 손상돼 공익요원으로 복무할 수밖에 없었다.

한 선수는 인터넷을 통해 병역면탈 브로커 조직과 접촉, 잠을 자지 않고 커피를 마신 후 이두박근 및 아랫배에 힘을 줘 혈압을 높이는 방법을 전수 받았다. 이들 브로커 조직은 효과가 없으면 자신들이 대신 혈압계를 차고 뛰기도 했다. 신종수법이다.

■비리 의사와 선수들, ‘악어와 악어새’

정상적인 병원은 축구를 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왼쪽 어깨가 조금 탈구되면 ‘어깨 염좌 및 긴장’에 불과해 수술하지 않고 고의성으로 보여도 병사용 진단서를 떼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비리가 이번 사건에도 조력자는 있었다. 경기 파주시에서 정형외과 원장으로 있는 윤모씨는 축구선수들이 병역을 면제받으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수술을 해주고 병사용 진단서를 끊어줬다.

또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하지 않았으며 재활 운동만으로 치료가 가능해도 메스를 꺼냈다. 탈구 정도가 심하지 않다며 자신이 직접 선수의 팔을 잡아 당겨 X-Ray를 촬영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이를 통해 윤씨는 1인당 수술비와 입원비 등 200∼300만원씩 모두 2억4100여만원의 부당 이득을 올렸으나 타 병원에 비해 병사용 진단서가 과다 발급된 것을 이상하게 여긴 병무청의 수사를 의뢰, 결국 검찰에 꼬리가 잡혔다.

검찰 관계자는 “수술 및 진단서 발급을 쉽게 해준다는 소문이 전국으로 은밀하게 퍼져 선수들이 몰려들었다”며 “선수와 윤씨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구조적 비리”라고 말했다.

■왜?

축구 실력이 뛰어나면 상무부대로 차출돼 군 복부 중에도 운동을 지속할 수 있으나 혜택은 모든 선수에게 돌아기지 못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현역으로 뛸 수밖에 없다.


축구 선수들은 다른 종목과 달라 2년 동안 운동을 중단하면 근육이 풀려 다시 운동을 시작하더라도 선수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선수 생활을 계속한 뒤 축구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병역 면제 받거나 실업 축구팀을 운영하는 업체에서 공익근무를 해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와 첨단범죄수사부는 축구선수와 윤씨, 브로커 등을 기소하고 병무청에 수사결과를 통보해 신체검사를 재실시, 병역의무를 이행토록 할 예정이다.

/jjw@fnnews.com 정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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