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동호회 운영자 3인의 ‘즐거운 수다’

      2008.02.21 16:08   수정 : 2014.11.07 12:30기사원문


조금 과장하자면 네이버, 다음, 싸이월드 등 각종 포털 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있는 뮤지컬 동호회는 ‘제4의 권부’이자 ‘밤의 대통령’이다. 한 편의 뮤지컬이 올려지는 무대(극장)와 뮤지컬을 만드는 제작자, 배우 등과 함께 관객은 뮤지컬을 움직이는 네번째 동력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뮤지컬이 주로 공연되는 밤의 공연장을 지배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현재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동호회만도 대략 70∼80개.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회원 수가 대략 1000명에서 1만명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뮤지컬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관객의 숫자가 40만∼50만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식의 추산에는 허수가 존재한다. 우선 이름만 올려놓았을 뿐 전혀 활동하지 않는 숫자가 상당수에 이르고 한 사람의 관객이 여러 동호회에 중복 가입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인 뮤지컬 마니아의 숫자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공연기획사의 대표는 “현재 마케팅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뮤지컬 동호회는 대략 40∼50개에 이른다”면서 “이들 동호회에서 열성적인 활동을 펼치는 뮤지컬 마니아는 적게는 1만명에서 많게는 4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1년에 최소한 10편 이상의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을 뮤지컬 마니아로 분류한다. 이들은 대개 한 작품을 반복 관람하는 경향이 높고 뮤지컬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감식안도 일반관객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 공연제작사 입장에서는 ‘특별 관리’ 대상이다. 공연계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버팀목 역할을 하는 이들은 그러나 또 어떤 경우엔 비평가의 시선으로 ‘까칠한’ 리뷰를 쏟아내기도 해 제작사와 늘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트렌드 리더’이자 ‘얼리 어댑터(제품 초기 수용자)’로 뮤지컬계의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한 뮤지컬 동호회 운영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지난 19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만난 ‘송앤댄스’(네이버)의 구현영, ‘웰컴투브로드웨이’(다음)의 송하나, ‘오마이뮤지컬’(싸이월드)의 이정연씨 등 대표적인 뮤지컬 동호회 운영자 3인의 유쾌한 수다를 들어보자.

①우리 동호회 이래서 좋다
②내 인생의 뮤지컬
③올해 기대되는 작품
④한국 뮤지컬에 바란다

■구현영(33·송앤댄스 운영자·IT컨설턴트)

①지난 2000년 처음 생긴 '송앤댄스'의 골수 회원들은 '배움을 지향하는 관객'들이다. 공연을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뮤지컬을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런 노력의 하나로 '뮤지컬 스터디 모임' '뮤지컬 노래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동호회 내에서 운영되고 있다. 송앤댄스의 리뷰가 '까칠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은데 이는 배우는 자세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다. 요즘에는 뮤지컬 뿐 아니라 연극, 무용, 클래식 공연 등으로 관극(觀劇)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②개인적으로나 동호회 입장에서도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꼽을 수밖에 없다. 2000년 초연 당시 자발적으로 결성된 베사모, 즉 '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송앤댄스의 전신이다. 지난해 초연 7주년을 맞아 초연 배우들이 무대에 다시 섰던 공연도 감동 그 자체였다.

③창작뮤지컬로는 오는 4월5일 무대에 오르는 '소리도둑'이 가장 기대된다. 지난해 기대를 모았던 창작뮤지컬들이 대부분 큰 성과를 내지 못해 이번 작품이 창작뮤지컬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해외뮤지컬로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컴퍼니'와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 '씨 왓 아이 워너 씨'를 기다리고 있다.

④요즘 뮤지컬 팬들이 모이면 "작품 수는 많아졌는데 재미와 감동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 양적으로 팽창한 만큼 질적으로도 도약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티켓 가격, 여전히 비싸다. '비싼 공연=좋은 공연'이라는 일부 관객의 잘못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송하나(26·웰컴투브로드웨이 운영자·물리치료사)

①지난 99년 다음 카페에 둥지를 튼 '웰컴투브로드웨이'는 가장 오래된 뮤지컬 동호회다. 오는 회원 막지 않고 가는 회원 막지 않는다는 철칙을 철저하게 지켜 회원수(2만7000명)도 꽤 많은 편이다. 웰컴투브로드웨이는 다른 동호회에 비해 뮤지컬 상영회를 많이 한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뮤지컬 동호회 중 희귀 영상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공연제작사들이 우리쪽에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②개인적으로 "노 데이 벗 투데이(No Day But Today)"라는 뮤지컬 '렌트'의 가사를 좋아한다.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올렸던 '렌트'를 처음 보면서 뭔가로 머리를 꽝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뮤지컬에 빠져들었고 이런저런 뮤지컬을 보다가 뮤지컬 동호회의 운영자가 됐다. 그냥 뮤지컬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관객에서 '적극적인 관객'이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는데 뮤지컬 '렌트'가 내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③창작뮤지컬로는 '소리도둑'과 '내 마음의 풍금' '형제는 용감했다'가 가장 기다려진다. '소리도둑'은 남경주·최정원이라는 강력한 캐스팅이, '내 마음의 풍금'은 최근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무비컬에 대한 기대가, '형제는 용감했다'는 소극장 뮤지컬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장유정 연출에 대한 신뢰가 그 이유다. 해외작품으로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컴퍼니'와 '포스트 손드하임'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씨 왓 아이 워너 씨'가 기대된다.

④창작뮤지컬이 좀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외적으로 화려한 것도 좋지만 내적으로 더욱 충실한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수적으로 절대 부족한 스태프와 배우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더욱 안정적인 창작 작업이 가능하고 투자 여건도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정연(29·오마이뮤지컬 운영자·회사원)

①지난 2003년 창립한 '오마이뮤지컬'은 소수를 지향한다. 회원수가 1800여명으로 비교적 적은 편이다. 창립 초기에는 '즐거운 중독'을 모토로 내세웠지만 얼마전 '공연과 사람 그 이상의 감동이 함께 하는 오마뮤'로 케치프레이즈를 바꿨다. 공연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에서다. 대부분의 뮤지컬 동호회는 여성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 동호회에는 남녀 비율이 3대7에 이를 정도로 남성 회원이 많다. 초대 운영자가 남성이어서 그런 듯하다.

②창작뮤지컬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해외뮤지컬로는 '빌리 엘리엇'을 꼽고 싶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 영국 런던에서 본 '빌리 엘리엇'은 최근 국내에 유행하고 있는 무비컬의 모법답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무비컬에서 원작의 해체와 재구성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런던에 도착한 첫날 한번 보고 여행 일정을 바꿔 마지막 날 한번 더 봤을 정도다.

③스티븐 손드하임의 '컴퍼니'가 가장 기대된다. 지난해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스위니 토드'을 통해 손드하임의 위대함을 직접 목격했다. 이번에 그의 또다른 걸작 '컴퍼니'가 공연된다고 해서 벌써부터 벼르고 있는 중이다.

④뮤지컬 시장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간혹 있다. 한꺼번에 거품이 꺼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물론 현상황이 거품은 아니겠지만, 좀더 신중하게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뮤지컬 제작자들이 단숨에 큰 성과를 내겠다는 조바심이나 욕심을 버렸으면 좋겠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뮤지컬은 '로또'가 아니라 '문화'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국내 대표적인 뮤지컬 동호회 운영자인 구현영, 이정연, 송하나씨(왼쪽부터)가 뮤지컬 '맘마미아'의 한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박범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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