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왜? 당신을 돌아봐!

      2008.03.12 16:14   수정 : 2014.11.07 11:02기사원문


“저 그냥 가만히 있다 나가면 안 될까요?”

스물아홉 청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몸 파는 여인이 방 구석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한국말이 어눌하네요?”

침대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비좁은 방에서 그와 그녀는 어색한 대화를 나눴다. 그게 바로 구태환 연출자와 창녀의 첫 만남이다.

8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온 그에게 친구들은 ‘한국식 환영회’를 열어줬다. 어색함과 찝찝함이 섞인 기분으로 쾌락의 공간에 발을 디딘 그는 곧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창녀라고 하면 굉장히 타락한 사람이고 저급의 인간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이 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요.”

지난해 연극 ‘친정엄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구 연출자가 이번엔 창녀를 주인공으로 두 편의 연극을 올린다. 오는 16일까지 대학로 블랙박스 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비계덩어리’와 같은 극장에서 오는 19일부터 선보이는 ‘이름을 찾습니다’이다.


‘비계덩어리’는 ‘목걸이’, ‘쥘르삼촌’과 같은 단편 소설로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출세작. 학창시절 집안 서재에 꽂힌 세계 명작 전집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했다는 구 연출자는 원작을 한국 실정에 맞게 손봤다.

보불전쟁은 한국전쟁으로, 시기는 1870년에서 1·4후퇴 직전으로 바꾸었다. 주인공들의 이름도 춘삼, 병구,수향 등 한국식으로 고쳤다. 원작에서는 프러시아 장교가 갈등의 씨앗을 제공하지만 연극 ‘비계덩어리’에선 국군 장교가 악역을 맡는다.

그는 이런 설정에 대해 “한국 전쟁이 내전인 만큼 아군이 오히려 적이 된다는 설정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프랑스인들이 독일인에 갖는 적개심이나 민족주의적인 감정은 많이 걷어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06년에 첫선을 보인 ‘이름을 찾습니다’는 거창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음습한 창녀들의 방 곳곳에 조명을 들이대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란 의문부호를 던진다.

구 연출자는 “창녀들의 일상을 그리며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꿈을 꾸고 산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또 그들의 소박한 꿈이 얼마나 이루어지기 힘든가를 보여 주며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닫게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모파상의 비계덩어리는 프랑스와 프러시아 간의 전쟁이 일어난 1870년을 배경으로 한 중편 소설.

포도주 도매상과 백작, 지방 유지와 수녀, 공화주의자, 뚱뚱한 창녀까지 10명의 프랑스인이 프러시아군을 피해 도주하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밤을 새고 달리는 마차 안에서 모두들 굶주림에 허덕이자 ‘비계덩어리’라 불리는 창녀는 자신의 음식을 기꺼이 나눠 준다. 이에 사람들은 이전까지의 고고한 모습을 잊은 채 ‘비계덩어리’에게 아부하기 바쁘다.

그런데 통행을 허락해 줘야 할 프러시아 장교가 ‘비계덩어리’와의 잠자리를 요구하며 길을 가로막는다. 마차에 탄 사람들은 한동안 이 장교를 비난하는 듯하더니 곧 ‘비계덩어리’에게 그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강요한다.


수녀들마저 ‘동기가 순수하다면 하느님은 모든 행위를 용서하신다’고 구슬르고 백작은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모두 당신의 책임’이라고 협박하자 그는 장교의 침실로 향한다.

다음날 아침. 지친 기색으로 나타난 ‘비계덩어리’에게 동행자들은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옷자락이라도 닿을까 꺼리며 준비해 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며 ‘비계덩어리’는 처절하게 흐느낀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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