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그리고 삼성특검/이두영 사회부장

      2008.03.24 16:26   수정 : 2014.11.07 10:06기사원문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끝까지 자리에 연연해 한다면 재임 기간 어떤 문제를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다.”

강연 및 언론 인터뷰를 통한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의 발언 취지다. 유 장관의 이 말을 전후로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공공 기관장에 대한 여권 및 새 정부 인사 등의 사퇴 촉구가 잇따랐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고언을 강조하면서 ‘盧코드 인사가 새 정부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불쾌감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여권 일각의 발언이 논란을 불러오는 것은 무엇보다 법과 원칙의 문제일 것이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지난 21일 유 장관을 직권 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유 장관의 발언은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은 모두 나가라는 압박으로 작용했고 공공 기관장에 대한 이런 압박은 법이 정한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는 직권 남용이자 공직자가 지켜야 할 준법 의무를 거스르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주요 기관장의 임기를 법으로 정한 것은 안정적인 공직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임채진 검찰총장이나 한상률 국세청장 등이 유임된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다만 전 정권 때 전문성과는 관계 없이 통치권자에 대한 충성 등을 이유로 보은 차원에서 임명된 소위 낙하산 인사 등은 ‘양식에 따라’ 자신의 거취를 정하는 게 옳고 업무 수행상 명확한 하자가 있을 경우 퇴진을 요구하는 데야 국민이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강부자(강남 땅부자들)-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은 또 다른 코드가 아닌가”라는 일각의 냉소도 힘을 잃지 않겠는가.

오죽했으면 ‘헌법 지킴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석연 새 정부 초대 법제처장까지 나서 “임기제라는 헌법적 가치와 현실 사이에서 상충하는 문제로 논란의 기준점은 헌법정신이 돼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겠는가. 그는 특히 “말(馬) 위에서 정권을 잡았다고 해 계속 말 위에서 통치할 수는 없다”는 중국 고사를 인용 “지금이야말로 헌법정신에 입각한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라고도 했다. 어떤 권력도 법과 원칙의 또 다른 표현인 헌법 위에 설 수 없고 헌법정신에 따른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충언일 것이다.

이 같은 법과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장기간 우리 사회의 큰 논쟁거리로 등장한 삼성 비자금 의혹 특검 수사 역시 불필요한 장외 논쟁은 자제하고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게 옳은 태도일 것이다.

25만명에 달하는 종사자, 국내총생산(GDP)의 20.0%, 전체 수출의 20.04%를 감당하며 반도체 D램과 TV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브랜드 가치 169억달러로 평가되는 삼성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논외로 치자. 그러나 특검을 벗어난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와 폭로, 특검에 대한 불신 등은 논란의 확대 재생산만 불러올 우려가 크다.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경영권 불법승계, 정관계 불법로비 의혹 등 특검 수사 대상 하나 하나가 폭발력이 큰 상황에서 수사와 관련한 장외 논란 확대 내지 ‘삼성에 면죄부 주기를 넘어 삼성 보호하기에 나선 특검’이라는 식의 불신은 오히려 특검 수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검수사는 지난 9일 1차 기한을 넘긴 뒤 다음달 8일 2차 수사기한 종료에 이어 보름간의 3차 수사기간까지 사용할 경우 4월 23일 공식적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그러나 특검 수사가 본류를 벗어난 장외 공방에 휘말리다 보면 검찰에 대한 불신으로 도입된 특검이 또 다시 무용지물이 되고 검찰 수사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그로 인한 막대한 국민 혈세 낭비 및 국가경제에 끼치는 악영향, 확인되지 않은 사실의 폭로로 ‘부패 공직자’로 낙인 찍힌 인사들의 명예 훼손 등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따라서 특검이 가급적 이른 시간 내에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는 것이 법치주의 사회에서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 등이 취해야 할 온당한 태도일 것이다.

/doo@fnnews.com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