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잠에서 깰 때/유인례 샌프란시스코 특파원

      2008.07.27 18:25   수정 : 2014.11.06 09:19기사원문

수직 상승과 수직 하강의 격랑의 경제 지표 상에서 아메리카호가 흔들리고 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지난 수십년 이래 최고치로 솟구쳤고 미 국가 채무액은 가구당 45만5000달러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와 반대로 끝없이 추락하는 달러와 주식 및 주택시장을 헤쳐 나가야 하는 미국인들의 소비 심리는 16년 이래 바닥을 쳤고 민심은 난파 직전의 타이타닉호 위의 촛불처럼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 11일 금요일 미 연방은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인디맥 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미 역사상 두번째 규모의 은행 도산을 목격하는 충격에서 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향해 이틀 후 13일 미 정부는 이번에는 빈사 상태에 빠진 미 모기지 시장의 두 거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을 구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최전방에서 총대를 메는 것은 미국 납세자들이다. 다음날 14일 예금 인출을 위해 도산한 인디맥 은행 앞에 늘어선 초조와 불안에 사로잡힌 수백명 예금주들의 모습이 대중매체를 통해 미 전역에 전파되었고 이는 수많은 미국인에게 1929년 대공황의 악몽을 상기시켰다.

특히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부터 보장되지 않는 10억달러의 만여명 인디맥 은행 예금주들은 불확실한 장래에 예금액의 50%만 환수 가능하다는 은행측의 발표에 맥없이 주저 앉았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동요하는 이들에게 조용히 기다리지 않으면 연행하겠다는 청원 경찰의 엄포는 이들의 불안에 끼얹어지는 기름일 뿐이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FDIC의 예치 총액 530억달러 중 최소 40억달러에서 최고 80억달러가 인디맥 은행 단독 구제에 사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아직 최악의 사태는 오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오히려 이번 인디맥 은행 도산은 금융권 줄도산의 서곡에 불과하며 향후 12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최소 150개에서 최대 7500개의 은행이 더 도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 미 감사원장 데이비드 워커의 “이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근원을 둔 금융시장 위기 규모는 실제 정부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것보다 최소 25배 이상 크다”는 경고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의 “경제 회생을 위한 연방의 모든 가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 경제적 시련은 장기적이 될 것”이라는 발표는 전문가들의 암울한 경제 전망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더 나아가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금번의 금융 대란을 단순 금융사건이 아닌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있으며 현재 FBI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1200건의 금융기관에 대한 수사는 이 같은 견해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과 금력의 중심에 서 있는 집권자들이 감지하는 미국 경제 상황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경제 구조는 탄탄하며 미국 경제는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그의 정치적 후계자 공화당 대선 후보 매캐인의 경제고문인 필 그램 역시 오늘날처럼 미국 경제가 호황인 때가 없었다는 말과 함께 미국 국민에게는 멀쩡하게 잘 나가는 경제를 가지고 징징거린다고 일침까지 놓았다.

세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미국의 현 경제 상황 속에서 해당국 지도자로서 무지하고 부적절한 발언이고 통각상실이 일어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국민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매캐인은 전문가들이 이번의 경제 대혼란의 주범으로 지적하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시작돼 클린턴 행정부를 거쳐 시장 만능론자 현 부시 행정부에 이르러 광란에 가까운 무법천지 기업 운영으로 급기야 오늘의 경제 대란을 초래한 기업규제 완화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여기서 올 대선을 앞둔 미국인들은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영국의 한 일간지가 부시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미국의 유권자들을 겨냥해 한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어떻게 6200만의 미국인이 이처럼 멍청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미국인들은 그간의 긴 잠에서 그만 깨어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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