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식 삼영엠텍 대표
2009.02.08 18:44
수정 : 2009.02.08 18:44기사원문
삼영엠텍 최우식 대표에게 회사는 친자식과 같은 존재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지난 1997년 회사 설립에서부터 현재까지 삼영엠텍의 성장과정을 지근거리에서 계속 지켜봐왔기 때문. 지난 10여년간 회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 오며 어느 덧 삼영엠텍의 일은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일까. 최 대표는 항상 회사를 가족에 비유한다. 또 직원들을 친동생이나 자식처럼 대한다. 경영이념까지도 고객 및 직원, 주주의 번영일 정도다.
직원용 가옥 15가구 제공 및 저이율 자금 대출 등 중소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든 복지제도가 삼영엠텍 내에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 대표는 “항상 회사와 함께 하다 보니 벌써 12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지금까지 회사가 발전해 온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밝혔다.
■회사와 함께 12년
최 대표가 삼영엠텍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중공업에 다니던 그는 뜻을 모은 28명의 동료들과 함께 삼영엠텍을 설립한다. 또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영업권 및 지분 20% 투자, 제1공장 준공 보증 등 파격적인 대우도 보장받는다.
최 대표는 “당시 일본인 고문의 조언을 듣고 일명 봉급쟁이 28명이 모여 1억원의 소규모 자금을 바탕으로 창업이라는 큰 일을 저질렀다”며 “삼성중공업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대출이 어려웠던 당시 산업은행을 소개받아 자금을 조달하는 등 여러 가지 도움도 받게 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삼영엠텍은 외환위기(IMF)로 인한 국내 경제 한파 속에서도 회사의 기반을 새롭게 다져나간다.
‘위기=기회’ 라는 생각을 근간으로 회사 안정화에 집중한 셈. 특히 제품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된 점은 삼영엠텍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회사가 항상 좋은 시절만 있을 수 없는 법. 삼영엠텍의 첫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28명의 창업 멤버간 다소 의견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 최 대표는 당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는 “당시 일부 인원에 대해 추가 지분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퇴사시켜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며 “하지만 지금도 회사를 떠난 창업멤버들과 연락하면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니 회사가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 후 회사 수출처를 확장해 2001년 코스닥시장 상장은 물론 12년 연속 흑자행진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2009년은 결실의 해이자 변화의 해
“올해는 삼영엠텍에 있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결실의 해입니다.”
최 대표는 기축년 2009년을 두 단어로 요약해 설명했다.
결실과 변화가 그것. 지난 2001년도부터 개발해 온 교량 강재 및 내진구조 부분 매출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좋은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국내외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의 성장세로 향후 삼영엠텍이 사상 최대 실적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소재산업을 넘어 기계장치 부문까지의 진입도 준비 중이다.
최 대표는 “지금까지 삼영엠텍은 영종대교와 서울 및 울산 월드컵 경기장, 광명역 등에 납품하는 등 꾸준히 성장해 왔다”며 “특히 올해부터는 SOC 부문에 주력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이 부문에서 기록했던 130억원의 매출액을 뛰어 넘어서 230억원으로, 또 매출 비중도 20∼25%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그의 올해 계획이다.
최 대표는 “삼영엠텍의 기본 원칙은 바로 직원과 주주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만큼 내외적인 부문에서 결실을 맺어 직원은 물론 주주들의 기대와 관심에 보답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always@fnnews.com 안현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