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회) 추억으로 용서하다③
2009.02.12 18:53
수정 : 2014.11.07 11:30기사원문
■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밖에 볼일이 있는 것처럼 별실을 나오자마자 작은 소리로 뉴욕지사장이 타박을 했다.
“회장님이 서인수씨와 있고 싶어 하는 거 몰라요?”
“둘이서 말이오?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안형모 실장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회장이 여자를 멀리한 지 7년째였다. 환갑 이듬해인가부터 섹스리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고 발기부전 증상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았다. 술이라도 한잔 하고 안 실장과 단둘이 있게 되면 너무 문란하게 사생활을 즐긴 탓이라고 자조적이 되곤 했다. 이런저런 사교 모임과 비즈니스마다 미인들을 만나고 파티와 식사를 숱하게 했음에도 그는 그래서 늘 점잖았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뉴욕지사장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아무튼 우린 따로 식사합시다. 비켜 드려 보고, 부르시면 그때 들어가는 것이 좋겠어요.”
그는 KDS 회장을 망치는 채홍사로 지목된 사람이었다. 쫓기듯이 뉴욕지사장으로 부임했으나 그의 충성심은 여전했다. 서인수와 단둘이 식사를 하고 싶어 하는 KDS 회장의 심리를 예리하게 읽어 내고 있었다.
안형모 실장은 빨리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시켜 먹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며 외교가의 후미진 골목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맨해튼의 역사만큼 오래됐을 것 같은 낡은 건물들이 몰려 있는 후미지다 싶은 곳에 한식당이 있어 안타까웠다. 외교가에서 한국의 위상만큼이나 초라한 레스토랑으로 보였다. 하필 세계 각국의 고급 손님들이 오가는 외교가에 이런 한식당을 열어 한국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지금도 같은 이름의 한국식당이 대사관과 특급호텔들이 몰려 있는 뉴욕 맨해튼 54번가에 자리 잡고 있으나 그때 그 맛의 강된장은 없다. 조리사가 바뀌고 아마 사장도 바뀌었을 것이다.
안 실장과 뉴욕지사장이 별실의 부름을 받은 것은 30분쯤 뒤였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KDS 회장이 오늘은 꽤 오래 식사를 했다. 수행원들이 밥을 먹는지 마는지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오늘은 또 안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차와 후식을 함께 하려는가 보았다.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는 워싱턴행 비행기를 좀 알아봐 도. 자고 올지도 모르이께네 안 실장은 그리 알고 채비하그라.”
차를 시켜 주면서 KDS 회장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워싱턴에 벚꽃이 한창이라 카더라. 마침 서 기자도 시간이 괘안타 하이께네 함 가볼라 그란다. 알긋제? 지사장은 여 남고, 우리 셋만 갈기다.”
안 실장과 눈이 마주치자 뉴욕지사장이 윙크를 해보였다. 거보란 뜻이었다. 안 실장은 이 욕망이 가능한 일인지 따져보고 있었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이 있으니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동했을 수도 있을 터였다.
뉴욕지사장이 운전하는 재규어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동안 안 실장은 끄덕끄덕 졸았다. 뒷자리의 KDS 회장과 서인수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해지고 있었다. 안 실장은 그것이 정보가 되어 귀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몸의 자동제어 장치가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졸음이 쏟아졌다.
뉴욕지사장은 운전을 하는 중에도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으나 안 실장은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비서실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