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아파트 공사 피 말리는 건설사

      2009.03.17 18:18   수정 : 2009.03.17 18:18기사원문


“중도금은 은행으로 돌아가고 하도급 업체는 현금 아니면 공사를 할 수 없다며 버티고…정상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한 중견 건설회사가 시공 중인 경기도 안양시 A주상복합 건설현장의 정대영 소장(가명·48)은 17일 공사 진행 상황에 대해 묻자 이렇게 푸념했다. 회사의 유동성 위기 소문이 불거지면서 하도급 업체들이 현금 결제만을 요구하며 공사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간간이 들어오는 중도금도 곧바로 은행 대출금 상환용으로 빠져나가 하도급업체에 현금을 지급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고 공사 지연으로 계약자들이 중도금을 내지 않고 버티면서 공사가 더 지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아파트 건설현장 중에서 시공사가 법정관리나 부도난 경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한주택공사 경기 광명사업본부의 김형인 관리부장은 최근 입주예정자들의 빗발치는 민원에 속상하다. 책임공구 일부 사업장의 시공사가 경영난으로 공사를 중단하자 비난이 발주처 담당자에게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공측은 시공사 교체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해당 업체가 시공권을 포기하지 않아 합법적 절차를 밟는 데만 최소 3개월 소요되기 때문이다.

■“공사에 쓸 중도금 은행이 먼저 챙겨”

“입주예정자들로부터 중도금이 들어와도 은행이 먼저 대출금 상환용으로 챙겨 버리니 공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17일 건설경기 불황으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안양시의 A주상복합 건설현장. 골조공사가 한창이지만 매번 하도급업체 등에 지급할 공사대금이 부족하다. 하도급 업체가 현금 결제만을 원하는데다 간간이 들어오는 중도금도 은행이 먼저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 사업장은 오는 2010년 4월 입주예정이지만 현재 공정률은 17.2%로 사실상 입주 시기를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현장의 정 소장은 “통상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사업장의 경우 주채권은행이 건설 프로젝트의 자금관리도 함께 담당한다”면서 “중도금으로 공사대금부터 지불해야 하는데 은행들이 PF채권부터 먼저 챙기면서 대금 결제가 쉽지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건설사에 대한 신용도가 추락하면서 철근이나 레미콘 등 원자재 공급 업체들이 오직 ‘현금’만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유동성 부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정 소장은 “어음으로는 철근이나 레미콘 등 원자재를 확보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며 “원자재 수급 차질로 공사가 지연되고 이 때문에 계약자들이 중도금 납부를 미뤄 현금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 소장은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금융기관·시공사·계약자가 조금씩만 양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공부문 아파트 현장도 줄줄이 공사 지연

대한주택공사 경기 광명건설사업본부의 김형인 관리부장은 “시공사를 바꿔서 공사를 빨리 재개해야 하는 데 시공사가 스스로 시공권을 포기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 부장이 관리하는 사업장은 현재 3개지역(광명역세권·광명소하지구·신촌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16개 단지다. 이 중 10개 단지의 공정률이 예정보다 뒤처지거나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광명 소하지구는 2개 단지의 공사가 ‘올스톱’돼 있다. 공사를 맡았던 신창건설과 대동종합건설이 모두 법원에 기업회생신청을 하면서 하도급업체에 대금지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입주예정인 신창건설 시공 현장은 골조공사만 마무리된 채 중단됐고 대동건설 현장은 지상 1개 층을 마저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멈췄다.

김 부장은 “공사 속행이 불가능해 시공사가 자진 포기할 경우 이르면 2개월 안에도 시공사 교체가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시공사가 계속해 공사를 하겠다고 우기는 경우 2주 간격으로 제재 공문을 수차례 보낸 후 공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기간까지 합쳐 3개월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부실 건설사들이 여러 공공사업장의 시공을 맡고 있다는 것. 대동종합건설은 계열사를 포함해 전국 13곳의 주공아파트 시공권을 확보해 놓고 있다.


김 부장은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로 무너지는 것이 가장 문제지만 시공사 교체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문제는 보완이 돼야 한다”면서 “주공 입장에선 조속히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건설사가 자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주기적으로 공문을 보내는 등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소송에 휘말릴 수 있어 조심스럽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건설 전문가들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중단과 지연이 되풀이될 경우 현장 관리부실 등으로 건축물의 품질도 크게 저하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cameye@fnnews.com 김성환 김명지기자

■사진설명=자금난과 시공사 부도 등으로 공사가 중단 또는 지연되는 아파트 건설현장이 속출하면서 입주지연 등에 따른 피해 보상을 둘러싼 시공사와 입주예정자 간 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공사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으로 공사가 중단된 경기 광명시 소하지구의 한 공공분양 아파트 건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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