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전위와 파격의 110분

      2009.06.22 16:16   수정 : 2009.06.22 16:13기사원문

‘사춘기’는 파격의 연속이다. 제목에 넘어가선 안 된다. 짝사랑에 애 태우는 10대들의 풋사랑 얘기가 아니다. ‘사춘기’는 그보다 훨씬 더 깊다. 그 끝은 인간 본연의 선과 악, 구원의 문제에 닿아 있다.


먼저 기발하기 짝이 없는 무대 장치부터 말해 보자. 첫 장면. 어둠이 걷히면 무대엔 의자 하나만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뒷면을 뺀 나머지 3면엔 빙 둘러 ㄷ자 모양으로 관객들이 앉아 있다. 소품은 그게 다다. 아니지, 그게 다가 아니다. 다른 소품은 무대 바닥과 뒷면에 숨겨져 있다.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바닥에선 불이 번쩍거리고, 벽인 줄로만 알았던 뒷면에선, 깜짝이야, 문이 스르륵 열린다. 뒷 벽은 다시 기차가 되고 한쪽 구석엔 ‘할리우드 스탠드 바’ 간판이 걸린다. 이럴 땐 조명이 소품을 대신한다. 무대장치의 미니멀리즘 덕에 자연스럽게 시선은 배우들에 고정된다. 볼거리를 갖춰야 하는 대극장 무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신한 시도다.

내용은 전위적이다. 미리 말해 두자면 ‘사춘기’는 독일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가 1891년에 쓴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을 원작으로 삼았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일이다. 당시 베데킨트는 도덕과 종교를 앞세운 독일식 권위주의와 위선을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었다. 14세 소년·소녀들의 강간과 임신, 낙태, 동성애 등 지금도 입에 담기 힘든 금기를 대놓고 다뤘으니 반응이 어떠했겠는가. ‘스프링…’은 사회 정화 차원에서 수시로 공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작품이 제 평가를 받기까지는 한 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0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올려진 ‘스프링…’은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봐도 ‘사춘기’는 여전히 파격이다. 그것은 금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그만큼 좁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3 영민(오승준)은 어설픈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염세주의자다. 신통하게도 그는 시험만 쳤다 하면 100점이다. 그는 입시에 목을 매는 선규(배승길)와 성경 밖에 모르는 천사표 수희(임수연)를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영민과 수희의 성 행위는 무대 위에서 꽤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성 행위를 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희는 “입 맞추지 마. 그럼 널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라고 애절하게 노래하지만, 영민은 “세상에 사랑이란 건 없어. 니가 날 사랑하지 않듯이 나도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잘라 말한다. 결국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선규는 군인 아버지의 권총을 자기 머리에 겨누고, 영민의 아이를 밴 수희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여기에 경찬(김보현)과 상욱(이희준)은 동성애 상대로 나온다.

영민은 사생아다. 진짜 엄마는 ‘할리우드 스탠드 바’에서 일하는 작부다. 영민의 아버지는 그를 데려다 키운다. 아들을 낳지 못한 영민의 가짜 엄마는 겉으론 영민을 위하는 척 하지만 실제론 그가 “죽어주길” 바라는 이중인격자다.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란 영민이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끌리는 건 당연하다. 영민은 ‘파우스트’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이는 수희가 손에서 놓지 않는 성경과 대비된다.

사실 ‘사춘기’가 베데킨트의 ‘스프링…’을 원작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진짜 원작은 괴테의 ‘파우스트’로 보는 게 옳다. 노래 제목에도 ‘파우스트’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발푸르기스의 밤’, ‘메피스토의 계약’, ‘그레첸’이 바로 그렇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중세 유럽 마녀들이 벌이는 광란의 축제를 말한다. ‘메피스토의 계약’이란 파우스트 박사가 영혼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맺은 계약이며, ‘그레첸’은 파우스트가 몸을 더럽히는 지고지순한 처녀의 이름이다. ‘사춘기’에선 수희가 곧 그레첸이다.

결말도 엇비슷하다. 세상의 선을 저버린 반(半) 악마 파우스트는 죽은 뒤 그레첸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영민은 수희·선규가 죽자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미쳐버린다. 그런 영민을 둘이 구원한다. ‘파우스트’에 비해 다소 어색한 해피 엔딩이지만 어쨋든 결말은 그렇게 매듭지어진다.

남자 여덟, 여자 둘, 모두 열 명의 출연진은 110분 동안 쉼없이 움직인다. 바로 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안쓰러울 지경이다. 덩치가 큰 장원령(용만 역)이 그 중 절반은 흘렸을 게다. 저승사자(쇼펜하우어) 역의 조영태는 새빨간 옷에 치켜뜬 눈하며 으시으시한 걸음걸이하며 영락없이 저승사자를 닮았다. 김보민(화경 역)은 여자 역할을 배꼽 빠지게 잘 했고, 진짜·가짜 엄마 역의 홍윤희는 연기는 이래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하양·검정·빨강으로 구분되는 의상은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 작품은 옷 색깔만 봐도 어떤 장면이 나올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노래는 좀 그렇다.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이다. 몸에 붙인 마이크에서 가끔 찌지직 소리가 난 것도 신경에 거슬린다. 그러나 영민과 수희가 부른 넘버 ‘그레첸’은 참 듣기 좋았다.


‘사춘기’는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즐겨찾는 관객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지한 연극을 볼 때처럼 진지한 뮤지컬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이젠 ‘뮤지컬=사랑’ 식의 천편일률적인 등식을 깰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사춘기’는 국내 뮤지컬의 지평을 넓힌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을 듯하다. 서울 명동 해치홀, 오픈런.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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