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호황기에 뜨는 작가와 지는 작가

      2009.06.25 16:52   수정 : 2009.06.25 16:52기사원문

▲ 펑정제의 ‘중국초상’
지난 2002년 장샤오강, 쩡판즈 등 중국 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보며 사람들은 버블이라고 투덜댔다. 중국작가 작품이 1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나간다니 너무 비싸다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5년 뒤 쩡판즈와 장샤오강의 작품들이 10억원 이상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무려 100배에 이르는 어처구니 없는 가격상승이었다.

분명 버블이었지만 점점 더 많은 투기자본이 중국현대미술로 흘러들어가 제2, 제3의 장샤오강을 찾아 달라고 난리였다.

쩡판즈와 장샤오강 등 이미 국제 시장에서 성공한 작가들의 성공신화에 만취한 사람들은 ‘새로운 중국작가를 찾는’ 행렬에 올인했다. 적어도 미술에 있어서 ‘메이드 인 차이나’는 일종의 명품 보증서 역할을 했다. 실제 작가들이 “내가 만약 중국 국적이었으면 더 높은 가격에 팔릴 텐데…”하며 아쉬워했다. 중국작가의 위상은 여러 곳에서 통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2007년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생존 작가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작가 열 명 중 다섯 명이 중국작가라는 조사가 나왔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미안 허스트의 뒤를 이어 장샤오강이 한 해 동안 560억원을 거래한 작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뉴욕의 페이스 갤러리가 장샤오강과 장환을 전속 계약했고, 아쿠아밸라 갤러리가 쩡판즈와, 매리분 갤러리가 아이웨이웨이와 계약하며 중국작가들의 메이저 시장에서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여기에 더해져 런던의 찰스 사치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구입해 새로 확장 이전하는 사치 갤러리의 개관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2008년 후반기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중국 현대미술은 버블과 투기 이야기만 나오면 단골로 인용되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중국 현대미술이 걸어온 길은 크고 화려했다. 그 화려함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고 놓쳤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구겐하임미술관과 뉴욕 모마 등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버블논쟁 속에서 추락한 작가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수도 없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 중국 현대미술의 오늘이다.

이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최소한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아시아 작가로서 스타작가로 올라서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버블 논쟁에 휩싸이지 않고 스스로를 관리하며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을 해 낼 수 있는 작가정신의 회복이다.

베이징에 사는 꽤 유명한 한 젊은 작가가 있었다. 중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언제나 일인자의 대접을 받았고 평단과 시장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국제적인 비엔날레에서 중국을 대표했고 그를 다루는 잡지는 미술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런 명성 덕분에 점점 더 많은 해외 컬렉터와 중국 내 컬렉터가 생겨났고 미술 이외에 시작한 사업 역시 작가의 명성과 더불어 연이어 히트했다. 결국 작가는 높아진 수요를 반영해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앤디 워홀도 그랬고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도 그러는데 자기는 왜 안 되느냐는 반응을 보이며 팩토리 시스템을 가동했다. 한껏 높아진 위상 덕분에 어떤 평론가나 큐레이터의 쓴소리는 사라지고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달콤한 말만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게 해서 쏟아져 나온 그림 앞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중국 현대미술의 선두주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그가 그린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이즈만 키웠을 뿐 여러 사람이 그린 것이 너무나 티나는 작품이었다.

반면 그의 친구는 작품 가격이나 대중적인 인기, 국제적인 인지도 등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작가였다. 시장에서 인기도 없을 것 같은 작품을 고집하면서도 다양한 붓질을 실험할 만큼 스타일에 열려 있는 작가였다. 우직하게 혼자 작업하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장에 많이 풀리지 않았다.

이후 해외에서의 잇따른 호평에 시장의 반응을 얻었지만 결코 여기에 반응해 시장이 요구하는 팔리기 좋은 작품을 생산하지 않았다. 그는 곧 뉴욕 화랑의 전속작가가 되었고 중국 생존 작가로는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영광을 얻었다.

▲ 쩡판즈의 '마스크'. 그는 광조우 트리엔날레를 통해 국제 무대에 소개된 뒤 독일, 프랑스, 미국, 런던, 한국 등에서 '마스크 시리즈'로 돌풍을 일으켰다.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했으며,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지난 2008년 5월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가 100억원을 기록했다.

지금도 그는 이야기한다. “만일 내 작품이 시장에 많이 팔려 나갔더라면 경제가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그 작품들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렸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위 두 개의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다. 시장의 호황에 한 작가는 추락했고 다른 한 작가는 정상에 올랐다. 사람들은 숫자에 쉽게 현혹된다. 객관적인 양과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점이 맹점이다. 투기에 눈먼 자본이 작품 자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착시에 베팅하고 이는 또 다른 베팅을 부른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작품을 고를 때는 3가지 필요충분조건을 확인해 봐야 한다. 첫 번째는 다른 작품으로 교체할 수 없을 것, 다시 말해 동어반복을 하고 있지 않을 것, 두 번째는 미술관 전시에 적합할 만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을 것, 세 번째는 적어도 2개의 문화권, 2개의 국가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량생산은 필연적으로 동어반복을 생산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된 동어반복은 결국 미술관 등의 기관에서 전시할 명분을 훼손시킨다.

불황과 버블 논쟁 속에 베이징의 많은 화랑들이 문을 닫고 인력을 감원하고 전시를 취소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야심차게 10년 계약으로 베이징에 진출한 페이스 갤러리 역시 1년 동안 전시를 안 한다는 방침이고 해외 화랑들 역시 속속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었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반면 중국의 화랑과 컬렉터, 작가들이 많을 것을 배웠을 것이다. 보다 신중해야 한다.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작품 자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중국상업은행이 꽤 재미있는 아트뱅킹을 시작했다. 중국 현대미술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장기 투자도 할 수 있는 상품이다. 중국을 비롯해 유럽, 미국의 미술전문가들이 한 팀이 되어 70여점의 작품을 선정해 20억원 상당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프라이빗 뱅킹 우수고객들에게 작품을 대여해 준다는 개념이다.

정확하게 12개월 뒤 고객이 그 작품이 진정으로 마음에 들면 구입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다시 돈을 돌려 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기존의 아트펀드와 자본이 옥션과 결부되어 착시효과 숫자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다면 중국상업은행의 방법은 투기자본이 아닌 실제 작품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교육과 감상 그리고 이를 통한 장기 투자의 공식이 금융권에서 시작된 좋은 예다.

/milklee@gmail.com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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