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기 미주 한인회장 “이제 미국시장 공략 나설때”

      2009.07.01 10:21   수정 : 2009.06.30 22:30기사원문
남문기 신임 미주 한인회총연합회장(56)은 1982년 단돈 3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무일푼이던 그는 지금 연매출 30억달러의 미주 최대 부동산컨설팅 업체 대표가 됐다. 남 회장은 지금 미국에서 성공신화를 창조한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으로 손꼽힌다.

건국대 법대 야간대학을 졸업한 남 회장은 지난 80년 1월 옛 주택은행에 입행, 2년 만에 그만두고 82년 공부를 하기 위해 도미했다. 하지만 당장 학비가 없는 데다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는 청소회사에 들어가 3년 반을 정말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밤낮으로 일해 청소회사의 한달 매상 8000달러를 35만달러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인 밑에서 닦은 화장실만 2000개가 넘는다고 그는 회고했다.

남 회장은 청소회사를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인정을 받았으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3년 반 만에 청소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업에 뛰어들어 20여년 만에 미국 1위 부동산컨설팅 업체인 '뉴스타 부동산그룹'을 일궈냈다. 퇴사 때는 남 회장의 청소회사 기여도를 아는 미국인 사장이 남 회장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월급을 계속 주었다.

남 회장이 청소회사에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공부는 자신의 영광이지만 돈은 가문의 영광 이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임기 2년의 제23대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에 당선돼 오늘부터 임기에 들어간다. 한국에 온 이유는 지난달 서울과 충북 제천에서 진행된 '2009 세계 한인회장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과 만나 투표권이 생긴 750만 재외동포들의 한국 경제·정치 분야 참여의지를 전달했다.

남 회장은 지난 6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가진 조찬 인터뷰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종착점에 도달한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지금이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할 적기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에 대해 비록 청소부 같은 하찮은 직업일지라도 '생즉필사(生則必死), 사즉필생(死則必生)'이라는 각오로 전력을 다한 것이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편집자주>
“삼성·LG·현대차 등 한국 기업들이 금융위기가 끝나가는 미국을 먼저 공략해야 합니다.”

남문기 미주 한인회총연합회장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미주시장 공략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의 경기 사이클이 과거에는 10년 이상이었는데 7∼8년으로 줄어들다가 최근에는 정보산업의 발달로 5∼6년까지 좁혀졌고 변동 폭도 들쑥날쑥하면서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남 회장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따른 충격이 거의 해소돼 지금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준비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에는 항상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준비하지 못한 게으른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서 “유대인들은 이미 미국에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했다”고 조언했다.

남 회장은 원·달러 환율도 1200원대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불경기지만 환율 덕분에 한국 제품이 일본 제품에 비해서는 가격 대비 상품의 질이 좋으니까 지금이 시장선점의 최고 기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글로벌 경기가 좋아지고 있으니까 확실하게 부양책을 펴시라고 말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울러 “기업들이 걱정만 하고 있다 보면 기회를 잃는다”면서 “지금이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최적의 시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남 회장은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공략할 때 현지 동포들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 대기업들이 시장개척을 위해 먼저 신상품을 동포사회에 들고 오면 250만 미국 현지 동포들이 한국 제품을 많이 사준다”고 말했다. 남 회장은 “이 경우 한국 기업들은 해외동포들에게 빚을 지는 것인데도 동포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후 이를 발판으로 미국 본토시장에까지 진입한 후에는 동포사회 지원에 대해선 너무 쉽게 잊고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해외동포를 상생적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남 회장은 “한국 기업인들은 미국 시장을 공략할 때 미국적 사고의 적극성이 결여되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를 가끔씩 봤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을 상대로 해선 제품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보다 간략하면서도 직설적인 마케팅전략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 회장은 “미국 시장 마케팅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직원을 파견하기보다 현지 동포나 미국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제안했다.

남 회장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 수출 증대에 도움을 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안 통과 등을 위해서도 동포들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 FTA 비준안 통과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시장, 애틀랜타시장, 미국 의회 상원의원 등을 만나고 있다”면서 “많은 재미동포들의 노력으로 많은 미국의 정치인들이 ‘친한파’로 돌아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광고마케팅 효과 절대적…국내 기업 적극성 결여

남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려면 광고 등 마케팅에 ‘올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창업 때 직원 3명이 고작인 부동산컨설팅 회사를 미국 부동산컨설팅 업계 1위 업체 ‘뉴스타 부동산그룹’으로 직접 키운 배경에도 광고 마케팅의 힘이 컸다고 설명했다.

남 회장은 창업 초기 “청소부를 하면서 번 돈과 우체국에 다니는 아내와 함께 모은 돈 4만달러를 종잣돈으로 했는데 대부분 광고비에 투입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부동산업의 경우 한달에 10만달러 이상 광고비를 지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는 한달에 최대 65만달러의 광고비를 지출할 정도로 홍보를 중요시했다”고 회고했다.

남 회장은 모든 직원이 양복의 겉옷, 와이셔츠, 업무용 가방, 속옷, 자동차 번호판에까지 회사의 로고와 사명이 박힌 복장을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하게 할 정도로 홍보광이다. 그의 독특한 광고마케팅 덕분에 부동산사업을 한 지 6개월 만에 회사가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고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남 회장은 꾸준한 광고 덕분에 영국 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남 회장은 해외동포 단체를 한국 정부 차원에서 육성해야 수출 등의 국가 기본산업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출국가인 한국 경제의 경우 재외동포들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

남 회장은 “해외의 750만 동포는 한국인의 15%에 달하는 데다 국내총생산(GDP)의 25%에 해당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 위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이 250만명, 지역별 한인회만 163곳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조직 산하에 ‘재외국민부(가칭)’를 만들어 통일부처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회장은 “머지않아 해외동포 1000만명 시대가 된다며 재외국민부는 오히려 통일부보다 역할이 더 클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외국민부는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를 고려할 때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남 회장은 재외동포의 이중국적 허용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웃 일본과 대만도 이중국적이 가능하고 이스라엘은 4중국적까지 허용하고 있다”며 “이중국적이 인정돼야 미국의 영주권자가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아 투표권을 갖게 돼 한인들이 힘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허용한 것을 왜 한국만 불허하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유대인 200만명이 미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계 동포들도 유대인 못지않은 미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모인 ‘아이비리그’에는 한국인이 1만3000명이나 다니고 있다. ‘제2의 오바마’가 한국인에게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미국 동포 2∼3세가 한국을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재외동포들에게 한국 시민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남문기 회장의 '아메리칸 드림'

남문기 회장(56)은 경북 의성 출생으로 건국대 법대와 야간대학원을 졸업했다. 남 회장은 고등학교 때 문제아였다고 회고할 정도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두 차례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옮길 정도로 학교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재수 끝에 건국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학생회장을 지냈다. 그는 76년 해병대에서 병역을 마친 뒤부턴 학업에 열중, 대학원까지 마쳤다. 지난 80년 한국주택은행(현 국민은행)에 입행해선 노동조합을 처음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은행을 그만두고 지난 82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빌딩 관리 및 청소용업 업체에 입사, 3년 남짓 청소부로 근무했다. 그가 몸담았던 주택·건물 청소회사 'CNP 메인테넌스'사는 로스앤젤레스 지역 업계 최고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 88년에는 매출 3조원의 뉴스타그룹 모체인 리얼티월드 뉴스타를 설립했고 2001년부터 뉴스타그룹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성공 노하우를 담은 자서전 '잘 하겠습니다' 등이 있다. 지난 5월 말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에 당선된 그는 7월 1일부터 공식업무에 들어간다.


■사진설명=지난 5월 말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에 당선돼 1일부터 공식 업무에 들어가는 남문기 회장이 지난달 29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사진=박범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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