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노사..위기를 기회로
2009.12.31 16:17
수정 : 2009.12.31 16:17기사원문
【부산=노주섭기자】 노사상생의 싹을 잘 가꾸고 키우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국내외적 환경으로 힘든 시기를 2차례나 겪은 국내 기업 가운데 노사상생의 길에 눈을 뜨고 실천, 신뢰의 뿌리가 깊이를 더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회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 이런 힘든 시기에 구조조정 대신 노동자 측은 스스로 임금인상을 유보하거나 삭감하고 회사 측은 고용유지를 약속하는 ‘양보교섭’이 윈윈하는 선진 노사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울산 현대중공업은 노사분규가 없었던 지난 1995년 이후 큰 폭으로 성장을 거듭하며 노사상생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회사로 꼽힌다.
이 회사는 1995년 전년도에 비해 매출액 기준으로 25% 성장했다. 1996년에는 20%, 1997년 26%, 1998년 18% 각각 성장했다. 1999년의 경우 세계 조선경기의 불황 등으로 매출액 기준 전년도에 비해 10% 정도 줄었으나 여전히 663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자살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4년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결별한 후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15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우며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중도해고 없이 정년을 보장하는 것도 노조 변신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중공업은 직원 평균 근속 연수가 19.4년으로,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길다. 2006년 정년 연령을 만 57세에서 58세로 한 해 늘렸고 2008년에는 정년 후 1년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직원들간에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책임의식이 강하다.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애사심과 동료애를 꼽을 만큼 ‘회사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한번도 정리해고를 단행한 적이 없으며 인사관리 전문 컨설팅기업인 휴잇 어소시어츠사로부터 2009년까지 4차례나 ‘한국 최고의 직장(Best Employers in Korea)’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주)동성화학은 1959년 창업 이래 50년간 단 한차례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은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2009년 1분기 영업이익이 14억원으로 2008년 1분기 3억원 영업손실에서 흑자 전환했다. 최근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이런 경영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위기 상황에서 생존이 최우선이라는 데 노사가 인식을 같이 하고 노사안정을 토대로 생산성 향상 및 원가 절감에 총력을 다해 경쟁력을 키워 나갔기 때문이다.
(주)동성화학은 노조가 먼저 고통분담을 제의함으로써 위기극복에 나섰다. 2009년 1월 30일 회사 강당에서 임직원 등 노사가 참여한 가운데 ‘노사경영위기 극복 선언식’을 가졌다. 이를 통해 2009년 임금협약을 무교섭형태로 회사에 일임했다. 임금협약 만료일이 1년 가까이 남은 상황에서 양보교섭을 한 것이다.
노조의 결단은 1989년 노조 설립 이후 20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한 안정적 노사관계 및 외환위기 극복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IMF 외환위기 때도 노조가 먼저 1998년 총액 임금 동결과 상여금 350% 반납을 제의했고 회사는 고용안정을 약속했다. 이렇게 노사가 합심해 노력, 회사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당시 싹튼 신뢰의 뿌리는 전통이 돼 회사를 굳건히 받치고 있다.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 취임으로 화제를 모았던 부산 사하구 구평동 YK스틸은 부산지역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노사간 대화를 통해 직원 정년연장에 합의하고 임금 피크제를 도입, 노사화합 분위기를 고조시켜 또 한번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1950년대 설립된 극동철강으로부터 출발해 이후 금호산업, 한보철강을 거치며 마침내 2002년 12월 미국과 일본, 태국에 철강전문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철강 전문기업인 야마토공업의 일원으로 재탄생하게 된 YK스틸은 창립 이후 ‘인간존중경영’ 원칙을 확립, 상생의 노사협력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특히 설비의 현대화와 시스템의 선진화, 소그룹 혁신활동, 사회복지재단 설립을 통한 지역사회 복지활동 등을 통해 글로벌 기업경영을 위한 초석 다지기에 전념하고 있다.
이 회사 최창대 사장은 “노조위원장 경험을 통해 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은 오직 그 기업의 모든 사람들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roh12340@fnnews.com
■사진설명=대표적인 노사 상생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주)동성화학 노조가 지난해 '임금협약 무교섭 회사위임 및 경영목표 달성 위기극복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