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제 회귀,실패 안하려면/이기훈 대학생 명예기자

      2010.01.05 16:15   수정 : 2010.01.05 16:15기사원문


2010학년도 대입에서 대세처럼 자리 잡았던 학부단위 모집이 줄어들고 학과별 모집이 늘어났다. 지난해 1월 학부제를 의무화하던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그 흐름은 더욱 가속화됐다. 연세대와 한국외대, 건국대 등이 올해부터 학과제 모집을 실시하면서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가는 형국이다.

지난 1995년 정부와 서울대는 학부제를 통해 미국처럼 교양을 갖춘 ‘전인(全人) 교육’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본격적으로 학부제를 추진했다. 학생은 진로에 대해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관심 있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제도는 획기적일수록 치밀하지 못한 법인 모양이다. ‘성급하게’ 실시된 학부제의 폐해는 바로 나타났다. 단지 큰 틀에서만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 학과를 학부로 통합, 운영하다 보니 학과간 서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양한 전공 선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던 학부제가 정작 학문 사이의 줄 세우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상호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는 학과지만 상대적으로 (학점이)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학과와 그렇지 못한 학과로 서열이 갈리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학생들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수험기간 내내 ‘경쟁’에 내몰렸던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까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 또 다시 ‘피말리는 경쟁’ 속에 뛰어들어야 했다. 실제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는 많은 대학에서 학점 평균이나 외국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전공 선택의 우선권을 주고 있다. 학부제의 장점인 전공 선택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신입생이 되자마자 학점 경쟁에 뛰어드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학부제의 또 다른 장점으로 언급된 비인기학과로의 학생 유입도 생각만큼 순탄치는 않았다. 이는 학부제와 함께 복수전공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비인기학과를 선택한 학생 대부분은 ‘소신지원’이 아니라 경쟁에서 밀린 학생들이 상당수였고 이 학생들이 복수전공제도를 통해 인기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 결과적으로 학부제 내에서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현상을 초래했다. 비인기학과를 선택한 이들은 자신의 전공을 주 전공으로 여기기보다는 다른 인기학과를 주 전공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비인기학과 학생 수는 늘어났을지 모르지만 실상 그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학부제를 도입한 지 15년 만에 학과제 회귀론이 본격화됐다. 물론 다시 학과제로 돌아가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면야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15년 뒤에 다시 ‘성급하게’ 학부제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올까 겁이 난다.

/freeche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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