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자력 새 시대 열린다 ③ 안전성 어디까지
2010.01.12 16:37
수정 : 2010.01.12 16:37기사원문
#1.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23분 옛 소련의 체르노빌(우크라이나). ‘콰쾅’ 하는 굉음이 조용하던 천지를 뒤흔들었다. 체르노빌 원전 제5호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이 한번의 폭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보다 500배 많은 방사능을 유출시켰고 그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최초 사망자는 30여명 정도였지만 이후 갑상샘암, 백혈병, 유방암 등 방사능 후유증으로 무려 2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 지역의 강에는 최대 4m에 이르는 ‘괴물 메기’가 발견되는 등 주변 생태계의 회복은 아직도 요원하다.
#2. 2007년 7월 16일 일본 니가타현에 리히터 규모 6.8이 넘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이 불청객은 수십년간 이어져 오던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신화’를 깨뜨렸다. 니가타현에 있는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됐기 때문이다. 유출 방사능이 미량이긴 했지만 지진에 대비해 최고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해 온 일본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자력은 석유를 이을 최고의 대안 에너지로 꼽히지만 ‘양날의 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에너지원 자체로서의 가능성은 매력적이지만 사고가 한 번 발생하면 회복 불가능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런 양면성 탓이다.
■세계 최고의 원전 안전성
“선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안전성 문제였다. 한국이 보여준 세계적 수준의 안전성에 감명받아 원전사업자로 선정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27일 모하메드 알 하마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자력공사(ENEC) 최고경영자(CEO)가 아부다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하마디 CEO의 말은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보여 주는 ‘바로미터’다. 사업자에 대한 ‘레토릭’(수사)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국 원전이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원전 안전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1978년 고리 1호기를 준공한 이후 단 한 건의 원전 사고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원전이 잠시 멈춘 것도 손에 꼽힌다. 1년간 원전의 불시정지(사고 또는 사고의 징후 시 운전을 중지하는 경우)는 1980년대 중반까진 원전 1곳당 평균 5건 이상이었지만 1998년 이후 1건 이하로 떨어졌고 2003년부터는 0.4∼0.6건을 유지하고 있다. 2008년에는 원전 1곳당 단 0.35번만 멈췄다. 원전 선진국으로 정평이 나 있는 캐나다(1.1∼3.1건), 미국(1.1∼1.4건), 프랑스(1.8∼3.2건) 등을 압도하는 기록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92년 도입한 ‘국제원자력 사고·고장 등급 체계’(INES)를 봐도 한국 원전의 우수성이 한눈에 나타난다. INES는 아주 경미한 고장을 ‘등급 0’으로 하고 최고로 심각한 대형 사고를 ‘등급 7’로 분류했는데 ‘등급 0’에서 ‘등급 3’까지는 사고라기보다는 고장이라고 보는 게 맞고 ‘등급 4’에서 ‘등급 7’까지가 사실상의 원전 사고다.
이 INES에 따르면 한국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건은 ‘등급 2’였다. 그것도 단 한 번이었다. ‘등급 1’과 ‘등급 0’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런 등급은 무시해도 된다는 게 대다수 원자력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고장이 적으니 원전 이용률도 당연히 세계 최고를 기록 중이다. 원전 이용률이란 1년간 원전이 정상운전되는 시간 비율로 높을수록 경제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우리나라의 원전 이용률은 93.3%로 2000년 이후 9년 연속 90% 초과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세계 평균(79.4%)은 물론, 미국(89.9%), 프랑스(76.1%), 일본(59.2%) 등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서울대 박군철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 운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원전 운영 실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겹겹의 다중 안전대책
한국 원전의 안전성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작되는 ‘다중방호’ 개념에서 비롯된다. 다중방호란 방사성 물질이 발전소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겹의 방호벽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개념에 따라 우리나라 원전은 다섯 겹의 방호벽으로 이뤄져 있다. 방사능 차단의 선봉은 제1방호벽(연료펠릿)이 맡는다. 핵분열에 의해 발생된 방사성물질을 특수 산화우라늄 금속 내에 가둔다. 미량의 가스 성분이 제1방호벽을 빠져나오면 제2방호벽(연료피복관)에 막히게 돼 있다. 피복관이 지르코늄 합금의 금속관이어서 가스를 밀폐시킨다.
제2방호벽에 결함이 생겨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와도 문제가 없다. 두꺼운 강철로 된 제3방호벽(원자로용기)이 대기하고 있다. 3방호벽까지 뚫린다 해도 제4방호벽(원자로건물 내벽)이 방사성 물질을 원자로 건물 내에 밀폐한다.
마지막 제5방호벽(원자로건물 외벽)은 1.2m 두께의 강화된 철근콘크리트로 이뤄졌다. 이 외벽은 비행기가 충돌해도 별다른 충격이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는 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검사 결과 150t급 보잉 707기가 시속 360㎞로 충돌해도 단 5㎝만 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이 발전소 외부로 누출됐던 것도 이 외벽이 설치돼 있지 않아서였다. 제5방호벽을 한국 원전 안정성을 담보하는 핵심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원전의 가장 큰 ‘적’인 지진에 대한 대비도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원전을 설계할 때 발전소 부지를 중심으로 반경 320㎞ 이내의 지질 및 지진조사를 거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보다 더 강하게 설계하기 위해서다. 부지지반가속도가 0.15g이 나왔다면 원전의 내진설계값은 이보다 높은 0.2g으로 짜는 식이다.
그 결과 국내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다. 우리나라엔 이제껏 단 한 번도 이 규모를 넘어서는 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다. 사실상 지진에 완벽히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 멸망을 담은 영화 ‘2012’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온다 해도 속수무책으로는 당하지 않는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원전이 즉시 멈추기 때문이다. 긴급운전정지 시스템의 힘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안전하다는 데 있다”면서 “공중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강진이 발생해도 원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star@fnnews.com 김한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