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운의 곁눈질 사람들..보기만해도 “好好好”

      2010.04.22 09:30   수정 : 2010.04.22 09:30기사원문

▲ 작가와 작품은 닮는다고 하지만 최석운과 작품은 영락없이 똑같다. 우리의 하찮은 일상과 주위 인물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채집해 화면속에 자유롭게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위트와 유머, 풍자와 해학이 넘쳐 보기만해도 웃음이 터진다.

그의 작품앞에 서면 빵∼ 터진다. 남녀노소 한결같은 반응이다. 동물도 그림볼 줄 안다면 개·돼지도 웃을 그림이다.

서양화가 최석운(50)의 작품은 웃기고 재미있다. 보는 순간 푸흡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다. 망가져야 뜬다는 요즘 연예인 코드처럼 그의 작품속 주인공들은 망가져서 더욱 정이 간다. 우리 일상속 굴욕 장면을 캡처한 것 같은 그림은 내숭과 호기심사이에서 줄타기한다. 옆으로 째진 눈, 들킬세라 흘깃 쳐다보는 주인공들은 각각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말없음 표의 감정,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랄까. 통속적이고 진부한 일상을 유쾌하면서도 통렬하게 채집한 작품은 삶의 페이소스를 자극하고 ‘고상하고 진지한 예술’에 시원한 똥침을 날린다.

서울 논현동 갤러리로얄(대표 김세영)에서 열리고 있는 최석운의 개인전 ‘나는 잘있다’전(15∼5월14일)은 자신에게 또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있다’는 안부를 담았다. 개나 새, 돼지가 조연으로 출연한 연극무대같은 감칠맛나는 기존 작품과 달리 이번 전시에는 각각의 인물과 동물이 주인공이 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한껏 치장한 옷을 야하게 입고 주위를 살피는 아줌마와, 비어나온 살을 감출길 없는 ‘섹시 대명사’ 메릴린 먼로도 최석운앞에선 그냥 아줌마일뿐이다. 통통한 몸매와 만화같은 그림, ‘둥글둥글 통통한 그림’ 대명사 페르난도 보테르를 떠올릴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은 보테르도 따라하지 못할 곁눈질, 시선의 미학이 압권이다.

작품과 작가는 닮는다고 하지만 최석운과 작품은 영락없이 똑같은 모습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림속 웃기는 인물이 빠져나온 듯 했다. ‘아줌마’ 그림처럼 작가가 아줌마 옷을 입고 있으면 그대로 작품 ‘아줌마’가 될 것 같았다.

▲ 소설가 성석제의 '인간적이다'책 표지 그림으로 사용된 최석운의 작품 '인간적이다'. 35x35㎝/Acrylic on canvas/2010

―웃기는 그림, 어떻게 나오게 됐나.

△대학을 마칠 무렵인 84년에 그린 ‘낮잠’때문이었다. 지금 나의 그림들이 풍자적이거나 해학적인 요소가 있고 재미가 있다고 하게 된 원조 그림이다. 작품은 골아떨어진 나와 내 작업실의 쥐와 바퀴벌레를 그렸다. (지금 생각하면 혐오스럽고 엽기적이지만) 작업실에 나타나던 쥐나 바퀴벌레를 그림에다 옮겼을 뿐인데 전시해놓고 보니 관객들이 웃는 거다. 비루한 일상, 힘든 삶을 그린 것이라 처음엔 기분이 상했지만 웃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80년대 당시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들과 씨름하고 있을때였는데 웃음으로 숨통이 틔여지는 이 그림때문에 일상을 작품으로 끌어들인 결정적 기회가 됐다.

―작품속 주인공들은 곁눈질의 달인들 같다. 왜 째진눈인가.

△뭔가 불만이 있으니까 그런 거다. 말은 하고픈데 눈치만 보고 있는 거다. 80년대 후반 이런 그림을 그릴때는 일러스트같다, 만화같다며 그림취급도 안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유행했던 추상화, 퍼포먼스등을 보며 도무지 대중하고 숨 쉴 수 없는 미술판의 그림들이 답답하고 염증까지 느꼈다. 미술이 위대하다거나 대단한 무엇이어야 한다고 결코 생각지 않았다.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는 그림, 나다운 그림을 고민했다. 가장 이해하기 쉬웠던 형식이 만화적인 것이었고 나다운 낙천적인 그림을 그렸더니 자연스럽게 재미난 그림이 나왔다.

―웃기지만 뼈있는 농담같은 그림이다.

△재미있게 보고 웃을 수 있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가 생각하면 절대 우습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조선시대 혜원 신윤복이나 단원 김홍도가 시대의 눈으로 인간사의 허위와 진실, 남성과 여성, 사대부와 서민같은 사회체제속의 대립적 요소를 부각시키고 세태의 풍자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하였듯이 나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서사적 기록으로써 현대인의 풍속적 거울을 그려내고 싶었다.(작가는 ‘조선후기 풍속화의 풍자와 해학에 대한 연구 :연구자 작품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작품속 인물들은 작가와 닮았다.

△모두 나답다고 한다. 날마다 보고 내 일상과 함께해서 일까. 개돼지는 이제 안보고도 그릴수 있다. 그런데 개를 자세히 봐라. 진짜 개하고 안닮았다. 개를 보고 그리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실제론 그림처럼 생긴개가 없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돼지는 개보다 그리기 쉽다. 허벅지, 엉덩이등 뒷모습은 사람같다. 내 돼지다. 하하하. (교양있는 척, 천박한 듯 하면서도 귀여운)아줌마 또한 내 기억속 아줌마를 그렸을 뿐이다. 소설가가 글을 위해 취재하고 안테나를 세우고 다니듯이 나도 일상속에서 장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메꿔나간다. 보고 그릴려고 애쓰지 않는다.

▲ 술에 취해 호텔에 들어가 누워있다가 유체이탈 되듯 엎어진 자신을 바라보던 장면을 떠올려 그렸다는 최석운은 앞으로 호텔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작품은 Hotel/33.4x24.2㎝/Acrylic on canvas/2009

―소설삽화, 표지그림을 많이 그린다.

△과거 J일보 신춘문예 삽화를 그린적이 있다. 원고를 삽화로 옮기면서 내 작품이 굉장히 이야기적인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 문학작품속에서 아이디어나 구상을 많이 건져올리고 있다. 최근 소설가 성석세의 책 ‘인간적이다’ 표지그림도 그렸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은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재미있다. 이런 교류를 통해 노쇠해지고 굳은 세포들을 되살릴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지천명이다. 꿈이 있나.

△내 꿈은 전시 안하는 것이다. 1년에 20여차례 그룹전을 했고, 20여년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해왔다. 누군가는 왜 그리 많이 하냐고 쉽게 말하지만 전업작가들이 얼마나 숨막히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이제서야 좀 여유가 생겼다. 개인전을 1,2년 안하고 버틸수만 있으면 호흡을 가지고,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싶다. 5월에 제주에 내려간다. 그곳에 몇달 머물면서 무언가 새로운 음모를 꾸밀예정이다.하하.

‘최고가 아니라도 좋다. 유일해야 한다’고 했던가. “관객없는 예술은 없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고 주장하며 ‘나다운 그림’으로 씨름한지 25년. 최석운은 미술시장에서 ‘(뼈있는)풍자화’로 유일하게 인기작가가 됐다.

살아있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이는 일이듯 멋내지 않은 소박한 이야기로 후미진 일상을 포착하는 최석운은 ‘훔쳐보기의 짜릿함’ 혜원 신윤복의 회화적 유전자를 이어받은 작가다. 예민하면서도 따뜻한 시선, 미세한 삶의 기미를 포착해낸 작품은 그래서 웃기고 울림이 더 크다.

/hyun@fnnews.com
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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