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선수금환급보증서) 발급 안돼..수주 선박 30척 날릴판
2010.05.18 05:25
수정 : 2010.05.17 22:39기사원문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총 6척을 수주한 세코중공업 관계자는 최근 RG 발급을 위해 매일같이 은행문을 들락거리고 있다. 원칙적으로 계약시점으로부터 2개월 이내 RG를 발급받아 선주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선주는 5월 말까지 RG 제출시한을 연기해 줬지만 마냥 연장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은행에 가서 통사정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도와주고는 싶지만 시중은행에선 중소 조선사에 대해 RG를 발급하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세계 조선경기 침체의 난관을 뚫기 위해 애쓰는 중소 조선업계가 금융권의 '선수금환급보증서 발급 거부'란 암초에 부딪혔다.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중소 조선사들이 수주한 선박 30여척에 대해 시중은행들이 RG 발급을 중단, 이들의 무더기 수주 취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일은 1년여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의 RG 발급 거부에 지난 2월로 예정됐던 정부의 중소 조선사 종합지원대책 발표까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생존 가능성이 큰 중견 조선사들까지 경영난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RG란 은행이 일정 수수료를 받고 조선사에 제공하는 신용이다. 조선사가 선주로부터 선박 제작비용을 받고도 제대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RG를 발급한 은행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선주는 RG를 믿고 조선사에 선수금을 주기 때문에 RG가 발급되지 않으면 계약서는 사실상 무효가 된다.
중소조선사협회 관계자는 "중소 조선사의 경우 지난해 RG 발급을 한 건도 못 받은 업체들이 부지기수"라며 "지난해 신용위험평가에서 워크아웃 전단계로 분류된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받은 업체들은 사실상 RG 발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조선사 종합지원대책에 따른 정확한 지침을 내려주기 전까지는 RG를 발급해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선산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제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
여기에 포스코, 동국제강 등이 조선용 후판가격을 t당 82만원에서 90만으로 인상한 데다 그리스 재정위기 등의 대외변수까지 겹쳐 조선시황은 아직도 '안갯속'이라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에선 여전히 내년까지 조선경기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도 조선사에 물려 있는 돈이 많은 데다 은행들이 호황기에 무차별적으로 RG를 발급해 주다 호되게 당한 학습효과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중소 조선사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낮은 선가, 조선용 철판(후판) 가격 인상에 이어 금융권 RG 발급 거부란 '삼중고'에서 당분간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 조선사들은 6월 말께 예정된 정부의 중소 조선사 종합지원대책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지만 정부의 종합지원대책이 나오더라도 뾰족한 방법은 없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아무리 지침을 확정하더라도 자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 움직이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중소 조선업체들이 모두들 정부만 쳐다보고 있지만 민간(금융권)에서 제대로 따라주지 않아 갑갑할 뿐"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기자